ADVERTISEMENT

(4403)제84화 올림픽 반세기-아깝게 놓친 금메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믿었던 선수들이 탈락을 거듭함에 따라 선수단은 침통한 분위기에 젖어 들었다.
일부러 멕시코까지 날아와 따뜻한 격려를 보내준 장기영 IOC위원, 윤주영 칠레대사는 물론 열렬한 성원을 보내준 교민들 보기가 민망했다.
이제 남은 희망은 복싱의 지용주 (라이트 플라이급)와 장순길(밴텀급) 뿐이었으나 장도 준결승에서 「프리다디·무크왕가」 (우간다)에게 판정패, 동메달에 그쳤다.
뜻밖에 선전을 거듭한 지는 준결승에서 「휴버트·스크리프자크」(폴란드) 마저 꺾음으로써 결승에 진출, 은메달을 확보했다.
전 선수단은 첫 금메달의 가능성으로 아연 활기를 띠었으며 고국에서도 『기대가 대단들 하다』고 보도진들이 전해줬다.
26일 대망의 결승전. 지용주는 잘 싸웠다.
「프란시스코·로드리게스」 (베네쉘라) 를 초반부터 투지와 과감한 인 파이트로 밀어붙였다. 「로드리케스」 는 2회전에서 버팅으로 감점마저 당해 더욱 불리했다.
그러나 3회전 들어 주심은 「로드리게스」 의 계속되는 버팅을 못 본체 했고 페이스가 흔들린 지는 막판에 2∼3개의 잔 펀치를 허용했다. 모두들 지가 이긴 것으로 알았으나 결과는 3-2 판정패였다.
나는 이병희 단장을 비롯, 전 임원들과 함께 관중석에서 지켜 보았는데 채점을 기다리던중 배심원석에 앉아 있던 국제심판 주상점씨의 손짓을 보고는 『와! 이겼다』 고 소리를 질렀다.
경기전 우리 임원들은 주씨와 사전약속을 했다.
주씨는 배심원석에서 채점표를 미리 훔쳐 보고 지가 이길 경우 주먹 쥔 손을 펴기로 했던 것이다.
주씨는 지가 이겼을 것이라고 믿은데다가 흥분된 상태였던 탓으로 채점표를 거꾸로 보고는 이겼다는 사인을 낸 것이다.
강준호 코치는 판정에 불만을 표시했고 우리들은 야유를 보냈으나 이미 끝난 일이었다.
당시 지용주 (국민대) 의 나이는20세.
올림픽에 첫 출전하여 올림픽에 처음 채택된 라이트 플라이급에서 올림픽 복싱사상 세번째 은메달리스트가 됐으니 그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지는 그후 70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76년 은퇴, 모교인 원주 대성중고 복싱부 코치로 후진을 지도했다.
지는 그뒤로 가끔 폭력사고를 빚더니 지난해 8월20일 원주에서 같은 동네 주민과 술을 마시다 사소한 시비가 일어 다투던 끝에 흉기에 찔려 숨졌다.
이때는 복싱 코치를 그만 두고 사업을 하다 실패, 서적 외판원을 하며 어렵게 지낼 때라고 들었다.
화려했던 한 순간이 지난 뒤 스타의 처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일깨워 준 사건이었다.
나는 멕시코에서 보여 줬던 그의 불타는 투혼과 『선생님, 죄송합니다』 라며 내 손을 잡고 울먹이던 그의 목소리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나에게 또 하나의 충격을 줬던 인물은 사격선수 안재송이다.
자유권총에 출전했던 그는 5백41점으로 34위에 그쳤으나 국내에서는 명사수로 소문나 있던 터였다.
그도 10·26사태때 청와대 경호실 요원으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