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부산·울산, 원인 모를 가스 냄새보다 두려운 괴담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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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현상은 불안감을 낳는다. 여기에 당국의 안이하고 무능한 대응은 불필요한 공포와 괴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21일 부산 지역 해안가와 23일 울산 남구 지역에 악취를 풍기는 가스 냄새가 퍼진 후 확산되는 괴담은 전형적으로 이 같은 양상을 보여준다. 당국은 첫 사건이 발발한 지 닷새째이지만 여전히 원인의 단서조차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괴담이 확산되고 있다. 지진의 전조 현상이라거나 최근 논란을 빚은 주한미군의 ‘주피터 프로젝트(생화학 무기 방어시스템)’로 인한 냄새라는 소문이 가장 광범위한 축에 든다. 여기에 북한이 바이러스를 유포했다는 식의 믿거나 말거나식 루머도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양산되고 있다. 또 부산과 울산 지역의 석유화학 공장들과 인근 해안의 선박들이 비가 온다는 예보에 따라 미리 화학오염물질을 방류했다가 비가 오지 않아 냄새가 퍼졌다는 식의 확인되지 않는 소문까지 퍼지고 있다.

가스 냄새는 진정됐지만 괴담은 진정되지 않는다. 이는 당국의 대처능력에 대한 불신감 때문일 수 있다. 부산시는 가스 냄새 신고접수 후 비슷한 시각에 광안대교를 통과한 화학물질 탱크로리 4대를 쫓아가 조사하는가 하면 광안대교 도색작업 중 페인트 냄새가 날린 것이라는 등 광범위한 지역에서 벌어진 일을 놓고 지엽적 원인 분석에 매달렸다. 또 부산시는 상황이 종료된 21일 오후 10시30분에야 가스 냄새를 파악하고 있다는 문자를 시민들에게 보내 늑장대응에 대한 질타를 받았다. 울산도 소방차를 출동시켜 가스 농도를 측정하는 등 법석을 떨었지만 정작 원인에는 접근하지 못했다.

5년 전 남양주에서도 알 수 없는 굉음이 들려 ‘북한이 땅굴을 파고 있다’는 등의 괴담이 돌았다. 정밀조사를 통해 한 빌라의 보일러 문제 때문으로 밝혀내고 이를 고쳐 굉음이 사라진 후에야 괴담이 수그러들었다. 요즘처럼 민심이 흉흉한 때에 괴담은 더욱 민심을 이반시킬 수 있다. 괴담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부산·울산시 등 당국은 과학적이고 신빙성 있는 원인 규명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