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화·정 지고 아·소·산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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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2010~2011년 코스피 시장에선 자동차·화학·정유 업종에 속한 수출 기업의 주가 상승률이 유독 높았다. 이들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양적 완화, 중국 경제의 성장 등에 힘입어 상승세를 탔다. 이들의 주도로 국내 증시도 상승했다. 증권 업계에선 이 시기를 세 업종의 앞글자를 따 ‘차·화·정 전성시대’로 불렀다. 하지만 세계 경기가 침체에 빠지고, 국제유가가 하락하면서 차화정의 위력은 사그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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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상반기 들어 차화정의 뒤를 잇는 ‘신(新) 주도 업종’의 등장 가능성이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다. 바로 ‘아·소·산’이다. 정보기술(IT)·소재·산업재의 앞글자를 따 만든 단어다. 국내 증시에서 세 업종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충격에도 강세를 보였다.

미국 경기회복세, 기초체력 탄탄
최근 3주 주가수익률 가장 높아
이미 많이 올라 실적 잘 따져봐야
유진테크·한화테크윈 등 주목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브렉시트 충격이 시장에 반영된 지난달 27일부터 지난 19일 사이 코스피 시장에서 이들의 주가 수익률은 7~9%로 업종 중에 가장 높았다. 선진국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국가 중 시장 평균보다 초과 수익을 낸 나라의 비율이 가장 높은 업종은 IT·소재·산업재였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증시는 MSCI신흥국이지만 경제·기업 구조는 선진국에 가깝다”며 “향후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과거 차화정처럼 아소산이 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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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산 업종의 강세는 수출 시장인 해외 국가의 경기가 살아나기 때문에 나타난다. IT 업종은 미국 경기 회복세가 활기를 불어 넣어주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금리가 인상됐음에도 미국의 경제 기초체력(펀더멘털)은 탄탄하다. 미 공급관리자협회(ISM)가 집계하는 ISM제조업지수는 지난해 12월 이후 반등하고 있다. 전년 대비 평균임금 증가율은 매월 2%씩 상승 중이다. 김대준 연구원은 “IT 제품 수요와 직결되는 가계소비 여력이 줄지 않고 있다”며 “소비심리가 좋으면 IT주는 강세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소재 업종은 주요 소비국인 중국의 기업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서 철광석 등 원자재 가격이 반등한 영향을 받고 있다. 여기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IT 기업의 실적이 좋아지면서 관련 부품을 만드는 기업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

산업재는 ‘양적완화 피로감’이 호재로 작용했다. 유동성(돈)을 공급해 경기를 부양하는데 한계가 오자 많은 국가에서 재정 정책을 통한 투자 활성화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중국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만들어 주요국의 투자 확대를 독려하고 있다. 이런 환경은 투자와 수주를 기반으로 하는 산업재에 긍정적이다.

아소산이라면 아무 기업에나 투자해도 될까. 미래에셋대우에 따르면 최근 국내 증시 전체 상장사 중 52주 신고가(최근 1년간 중 가장 높은 주가)를 기록한 종목 중 IT업종의 비율은 26.8%나 됐다. 산업재(17.9%), 소재(11.7%)의 비율도 높았다. 주가가 이미 많이 올랐단 뜻이다.

고승희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고점 매수를 피하려면 주가 상승세가 계속될 기업을 골라야 한다”며 “시장 예상보다 더 좋은 2분기 실적을 발표할 곳에 투자하라”고 조언했다. 실제로 지난달부터 주가가 가파르게 오르던 ‘대장주’ 삼성전자는 7일 발표한 2분기 잠정 실적이 시장 전망을 뛰어넘자 이후 52주 신고가를 연일 갈아치웠다.

미래에셋대우가 분석한 최근 한 달 사이 2분기 영업이익 전망치 상승률이 높은 종목엔 3D낸드플래시 관련 반도체 기업인 유진테크(11.7%)와 피에스케이(21.7%)가 있다. 소프트웨어 IT업체 NHN엔터테인먼트(61.7%), 산업재 기업 한화테크윈(12.8%), 소재기업 풍산(8.1%) 등도 2분기 실적이 좋을 것으로 예상됐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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