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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병건 특파원, 현장을 가다] AR-15 소총 들고온 백인…거대한 참호로 변한 클리블랜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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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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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를 대선후보로 선출하는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를 하루 앞둔 17일 클리블랜드 무장경찰들이 방탄복을 입고 서 있다. [AP=뉴시스]

미국 정치의 이단아 도널드 트럼프를 공화당 대선 후보로 선출하는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17일(현지시간) 이곳의 시가지는 거대한 참호로 변해 있었다.

철제 펜스로 둘러싸 군 기지 방불
헬기 떠다니고 무장경찰들 경계
강경 흑인단체 “트럼프 폐기” 시위
그 뒤엔 백인들 일색 축하 행렬

전당대회장인 퀴큰론스 아레나는 철제 펜스로 둘러싸인 군 기지를 방불케 했다. 진입도로엔 ‘정지(STOP)’라는 커다란 붉은 글씨의 바리케이드가 차량을 막았다. 이곳은 백악관 비밀경호국과 공화당 전국위원회가 사전에 신분 확인을 통해 발급한 이중의 출입증이 필요하다. 안에서도 2차·3차로 삼중 검색이 이뤄진다. 퀴큰론스 아레나 앞의 상점가에도 사복경찰과 무장경찰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이곳에서 남쪽 시청까지 도보로 30여 분. 곳곳이 철제 펜스이고 바리케이드다. 시 경찰이 전당대회를 앞두고 신규 구입했던 철제 펜스가 6㎞ 길이 분량이었다. 텅 빈 도로엔 윙윙거리는 경찰차들만 질주했다. 얼룩무늬 위장복을 입고 소총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탄 검은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들도 늘어서 있었다. 시청 일대에선 갈색 쓰레기통은 사라졌고 투명비닐로 만든 임시 쓰레기봉투가 대신했다. 현지 언론들은 1968년 반전 시위 이후 최고의 경계조치라고 전했다. 트럼프를 대선 후보로 선출하는 클리블랜드는 ‘참호 대관식’에 ‘철책 전당대회’로 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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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현지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퍼블릭스퀘어에서 한 백인 남성이 AR-15 반자동 소총을 소지한 채 총기를 남이 볼 수 있게 휴대하는 오픈캐리법 옹호 시위를 하고 있다. 이곳은 공화당 전당대회장인 퀴큰론스 아레나에서 600m 떨어져 있다. 클리블랜드 경찰노조는 이날 안전을 위해 전당대회 기간(18~21일) 중 오픈캐리법의 효력을 정지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AR-15는 총기난사 사건에 자주 사용되는 무기다. 군용 M-16 소총과 성능이 비슷하다. [클리블랜드 AP=뉴시스]

이날 오후 4시쯤 시내 유클리드 애비뉴에 “트럼프 폐기(Dump Trump)!”를 외치는 시위대가 나타났다. 강경 흑인단체인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s)’와 성소수자단체·인권단체 등 전국에서 출동한 500여 명의 운동가가 ‘트럼프·공화당 차단(Shut Down Trump & the RNC)’ 집회로 나선 시가 행진이다.

흑인 청년 저스틴 샌터나는 “흑인 구역에 몰려 살아야 하는 우리들은 경찰에 체포당하는 비율도 더 높다”며 “그런데도 트럼프는 인종 갈등을 불어넣고 있다”고 비난했다. 시위대 위의 하늘엔 경찰 헬기가 웅웅거리며 날았고 시위대의 돌발행동을 막기 위해 기마경찰들이 뒤를 쫓았다. 이날은 시위 예고편이었다. 18일엔 총기 소지가 허용된 전당대회장 앞의 ‘이벤트 존’ 구역에서 오토바이족이 가세하는 ‘트럼프 시민연합’이 맞시위에 나선다.

시청 인근까지 몰려온 반트럼프 시위대의 뒤로는 또 다른 행렬이 줄을 섰다. 공화당이 주최하는 전당대회 축하행사다. 줄은 백인 일색이고 시위대에선 찾기 어려운 정장 차림이 눈에 띈다. 백인 청년 닉 폴리는 “‘트럼프를 지지하는가’라고 물을 때 답을 하지 않으면 트럼프 지지자”라고 귀띔했다. 이날 발표된 CNN·ORC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42%)이 트럼프(37%)를 5%포인트 앞섰다. 하지만 폴리는 “트럼프 지지자들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 여론조사에서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택시 운전사인 70대의 백인 제임스는 “오늘 경찰 3명이 총을 맞고 죽었다는 걸 들었는가”라며 “흑인들은 맘대로 총을 쏘면서 경찰이 총을 쏘면 흑인이라서 당했다고 주장한다”고 비판했다. 전당대회장 주변에서 만난 백인 여성 케일린 홉킨스는 어린 아들의 손을 잡은 채 “아무 일 없이 좋게 끝나기만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을 극과 극으로 나눈 트럼프는 대관식에서도 미국을 가르고 있었다.

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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