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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에만 부과, 방향은 옳지만 한번에 시행하려면 ‘산 넘어 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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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호 7 면

건강보험 부과체계는 난수표와 같다. 직장인은 근로소득(일부는 종합소득에도 부과)에 따라 물린다. 지역가입자는 종합소득이 500만원을 넘으면 소득·재산·자동차에, 넘지 않으면 재산·자동차, 생활수준 및 경제활동 참가율에 매긴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말 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매우 파격적인 안이다. 새누리당은 아직 별 움직임이 없다. 더민주안의 장점과 한계를 집중 분석한다.


장점 더민주 안은 재산·자동차·성·연령 건보료를 즉각 폐지하고 소득에만 부과하는 게 골자다. ‘원샷(one shot) 개혁’이다. 우선 난수표 부과체계가 간결해진다. 선진형 부과체계이기도 하다. 불만을 가진 사람의 대부분이 사회적 약자인 점을 감안하면 저소득층의 부담을 경감하는 효과가 있다. 은퇴자의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소득이 없는데도 아파트와 차량 때문에 매달 15만원 이상 보험료가 나오는 일이 없어진다. 허름한 연립주택에 사는 독거노인이 월 3만~4만원의 건보료를 물지 않게 된다. 또 행상의 노후 자동차 보험료와 전세·월세 보험료(250만여 세대)가 사라진다. 또 성·연령 보험료 때문에 갓난아기가 태어나자마자 3560원을 무는 문제점이 사라진다.


과제 재산·자동차·성·연령 건보료를 없애면 약 4조5000억원의 보험료 수입이 감소한다. 지역가입자 수입의 60.8%다. 이를 벌충하기 위해 보이는 소득에 거의 다 부과한다. 10가지 넘어야 할 산을 짚어본다.


①재산 폐지하자면서 상속·증여재산에 부과=더민주안에 따르면 양도상속·증여소득에 부과한다. 하지만 2014년 전문가 기획단은 일시적인 것이어서 건보료 부과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는 게 맞다고 봤다. 특히 상속·증여 재산은 부모에서 자식으로 이동한 재산이어서 보험료를 매기는 게 더 적합하지 않다고 봤다. 세 가지 소득에서 연 2조5785억원을 걷게 돼 있다. 양도소득 있는 사람은 연 61만 명, 상속은 5만 명, 증여는 8만9000명이다.


②퇴직금 2억원에 960만원=퇴직금 1억원이면 480만원을 매긴다. ‘건보료 폭탄’에 가깝다. 근로소득 형성 과정에서 이미 보험료를 냈기 때문에 이중과세일 수 있다. 그런데 퇴직연금에는 부과하지 않는다. 사적연금이라는 이유에서다. 매년 퇴직자 217만 명에게서 1조96억원을 걷게 돼 있다.


③세뱃돈 이자, 일용직 소득도 부과=현재 2000만원이 안 되는 이자와 배당소득은 분리과세 대상이어서 건보료를 매기지 않는다. 더민주안은 이자소득에서 1조1795억원, 배당소득에서 6018억원을 매긴다고 돼 있다. 14만4000건이다. 학생들의 세뱃돈에 이자가 생기면 건보료를 내야 한다. 826만 명의 일용근로소득에서 자그마치 2조6034억원을 걷는 걸로 돼 있다. 일급 13만7000원 이하는 세금을 매기지 않는 면세점에 해당한다. 세금을 안 내는 소득에 보험료를 매기는 게 논란의 소지가 있다.


④피부양자 전면 폐지 가능할까=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는 2049만 명이다. 보험료를 안 낸다. 외국에 비해 너무 많긴 하다. 이 중 소득 있는 사람은 214만 명(정부 추계 279만 명)이다. 소득이 없는 1700여만 명 중 세대주와 주민등록을 같이하면 피부양자(세대원)로 남아 보험료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주민등록을 달리하면 최저보험료(3560원)를 내야 한다. 수백만 명의 노부모가 여기에 해당한다. 소득 있는 214만 명은 액수에 관계없이 모두 보험료를 내야 한다. 170만 명은 연금 소득자다. 월 2만~3만원의 보험료를 내게 된다.


⑤연금 생활자 부담 증가=연금소득자는 지역가입자 102만 명, 직장가입자 77만 명, 피부양자 170만 명이다. 지금은 연금의 20%에만 낸다. 가령 100만원이면 20만원에만 보험료를 매긴다. 더민주안은 100%에 부과한다. 경북에 사는 노인의 예를 보자. 연간 2200만원의 소득(월 180만원)을 올리는데 동생 집에서 무상으로 거주한다. 지금은 440만원에만 보험료를 부과해 월 1만9000원을 내지만 더민주안대로 하면 9만2000원으로 껑충 뛴다. 단시간 근로소득도 지금은 20%에만 보험료를 부과하지만 더민주안에는 100%에 부과하는 걸로 돼 있다. 17만 명이 해당한다.


⑥월급 외 다 소득 있는 직장인 크게 올라=현재 직장가입자 중 임대·금융 등의 종합소득이 있는 사람은 293만 명이다. 지금은 7200만원이 넘는 3만9000명만 3.035%(2015년 보험료 기준)의 보험료를 내지만 앞으로는 모두 4.8%를 내야 한다. 대상자가 왕창 느는 데다 지금 보험료를 내는 3만9000명은 1.6배로 오른다.


⑦고액재산가 부담 완화=재산 보험료를 폐지하면 고액 재산가의 부담이 줄어든다. 강남에 사는 72세 노인을 보자(금융소득에서 연 50만원의 이자 받음). 10억원짜리(보험료 과표는 5억원) 주택, 토지 56억원(과표 28억원)이 있다. 건보료가 29만2000원에서 1만4000원으로 줄어든다.


⑧직장인 보험료 인하해야 할까=더민주안은 6.12%인 직장인 보험료율을 4.8%로 낮출 것을 제안한다. 개혁의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보험료 인상은 매우 어렵다. 더민주안대로 가입자위원회를 만들어 거기서 결정하면 더욱 그렇다. 차라리 증가한 수입으로 진료비 보장성(현재 63%)을 높일 수도 있다.


⑨국고지원금 증액 가능할까=건강보험법에 보험료 예상수입의 20%를 예산과 담배부담금에서 지원하게 돼 있지만 16%만 들어온다. 더민주안은 20%에 못 미치면 정산하게 돼 있다. 이렇게 하면 1조7758억원이 예산에서 나와야 한다. 예산 당국은 건보 흑자(17조원)를 이유로 지금의 지원금도 없애려 한다. 그런 마당에 더 지원할지는 미지수다.


⑩지역가입자 소득파악률 문제 없나=김종대 더민주 정책위 부의장은 “2000년 소득자료 확보율이 15~16%였는데 지금은 소득자료 확보율이 92.2%다. 일용소득 자료도 다 있는데 그거 다 합치면 자료 확보율이 95% 이상”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정부 시각은 다르다. 92.2%는 소득이 훤히 드러나는 직장가입자를 포함한 것이고, 지역가입자 중 소득자료가 확보된 사람은 50%밖에 안 된다고 반박한다. 게다가 이들의 절반가량이 연 소득 500만원(월 42만원) 이하인 점을 지적한다. 기초수급자가 아닌 이상 어떻게 월 소득이 42만원이 안 되겠느냐는 것이다.


더민주안이 너무 이상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 A씨는 “이상적 최선보다 현실적 차선이 답”이라고 말한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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