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물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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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어느 바닷가 마을. 아버지가 죽은 뒤 어머니마저 물에 몸을 던져 의지할 사람이 없게 된 별녜가 살고 있다. 물귀신의 존재를 믿는 주민들은 별녜를 멀리한다. 그녀의 어머니가 원령(怨靈)이 돼 자신들을 잡아갈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다. 그녀 역시 어머니의 혼령을 위로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린다. 결국 별녜는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바다에 나가 배 밑바닥에 구멍을 뚫어 정사(情死)한다."

1968년 발표된 이청준의 단편소설 '석화촌'의 줄거리다. 소설에는 우리 민족이 물귀신을 어떻게 여겨왔는지 잘 나와 있다. 바다에 빠져 실종된 사람은 귀신이 돼 저승으로 가지 못한다.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 희생자를 만들지 않고는 떠도는 신세로 살 수밖에 없다.

주민들은 자신이 다음번 물귀신이 될까 두려워 별녜를 따돌린 것이다. 넋 건지기굿, 수망(水亡)굿, 넋 굿…. 예부터 익사자의 넋을 건져 저승으로 보내주는 굿들이 있었다. 한강.대동강.압록강 등 일곱곳의 나루터를 지키는 칠독신(七瀆神)에게 무사고를 비는 제사도 치러졌다.

미국 일리노이주의 메이플 강에는 오싹한 사연이 서려 있다. '1백년 전 한 여자 아이가 수영하다 사라졌는데 시신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후 물 속에 있는 뭔가가 헤엄치는 사람의 발을 잡아당겨 30여명이 변을 당했다'.

호주에선 수신(水神)이 출몰하는 연못 전설이, 그린란드에선 물귀신을 쫓기 위해 샘물을 마시지 않는 풍습이 전해진다. 이런 괴담 때문인지 물탱크에서 실족사한 유령(검은 물 밑에서), 우물에 빠져 죽은 귀신(링) 등이 나온 영화가 최근 인기를 끌었다.

자신이 불리해졌을 때 남을 끌어들이는 '사회적' 물귀신도 있다. 심리학자들은 "물귀신 작전이 뒤틀린 집단의식의 표출"이라고 한다. 조직.상사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빗나간 행위를 서슴없이 한 뒤 탄로났을 때 조직을 끌어들여 보호막으로 삼는 것이다.

요즘 서울 여의도에 물귀신 괴담이 시리즈로 퍼지고 있다. '굿모닝 게이트'와 관련, 대선 자금의 일부가 드러난 것이나 조사도 받지 않은 연루 정치인의 명단이 무더기로 보도된 것 등이 물 속에서 벗어나려는 귀신 소행이 아니냐는 풍문이다.

무더위가 시작되려 한다. '위험한 물놀이'는 삼가자. 매년 여름 한강 수계에서 수백명이 안전사고를 당하고 있다.

이규연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