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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개혁, 빅딜 대신 스몰딜 반복해 서서히 풀어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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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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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미래연구원·경제개혁연구소·경제개혁연대가 주최한 ‘보수와 진보, 함께 개혁을 찾는다’ 합동 토론회가 13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은 해고규정 완화와 비정규직 해법을 놓고 토론을 했다. 왼쪽부터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박태주 노사정서울모델협의회 위원장, 전병유 한신대 교수, 이원덕 이수노동포럼 회장, 최영기 전 노사정위원회 상임위원, 금재호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교수. [사진 오종택 기자]

“한국 노동시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이중구조에 대기업과 영세사업체 이중구조가 더해진 이중의 이중화(Dual Dualization)에 처해 있다.”

노동시장 불평등 해법 모색
“법 조항 몇개 바꿔선 해결 못 해
사회적 합의 이룬 과제 먼저 처리
비정규직 문제는 별도 논의해야”

13일 개최된 보수-진보 합동토론회에서 발제에 나선 전병유 한신대 교수의 진단이다. 보수-진보 합동토론회는 이분법적 진영논리를 벗어나 한국 사회를 둘러싼 각종 난제의 해결책을 찾자는 취지로 지난해부터 열리고 있다. 국가미래연구원·경제개혁연구소·경제개혁연대가 공동 주최한다. 지난 4월 시즌1을 마쳤고, 6월부터 불평등을 주제로 시즌2를 시작했다. 이날은 ‘노동(시장) 불평등, 그 원인과 해법’을 주제로 해고규정 완화와 비정규직 보호 등에 관한 치열한 논쟁이 오갔다.

첫 발제자로 나선 최영기 전 노사정위원회 상임위원은 “한국은 20년 전 노동개혁을 시작했으나 만성적 고용 위기와 양극화를 한두 조항의 법 개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 아직 중대한 고비를 넘지 못했다”며 “노동개혁의 핵심은 연공 중심의 노동시장 구조를 직무형 노동시장으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전 상임위원은 “상시·지속적인 업무를 하는 비정규직을 면밀히 분석해 그에 상응하는 시장임금을 적용하되 정규직화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고용안정은 기업이, 임금은 근로자가 조금씩 양보하는 방향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발제를 한 전 교수는 ‘한국형 연대임금정책’를 제안했다. 그는 “한국의 가계소득 불평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간 수준이나 노동시장 불평등은 최하위”라며 “근로시간 단축, 일자리 나누기와 함께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을 조정하는 연대임금 모델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최상위층의 양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문직·고위공무원 등 상위 5%의 양보가 전제돼야 상위 10%의 양보를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논의해 볼만한 의견이란 평이 많았지만 추진 주체, 현실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있었다.

토론자들은 대체로 정규직 과보호 완화와 비정규직 처우 개선 필요성에 공감했다. 다만 구체적인 해법을 두곤 의견이 엇갈렸다. 금재호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교수는 “해고 규정을 완화하면 단기적으로 고용이 줄지만 1년이 지나면 빠른 속도로 회복된다”며 “정규직 보호를 완화하되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고, 정규직 전환 가능성을 높이는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중구조라는 제도적 요인만큼 기술 발전에 따른 노동 수요의 고급화라는 시장 요인도 중요하다”며 “이런 변화에 맞춰 공급도 탄력적으로 변해야 하고, 결국 교육과 직업훈련을 강화하는 것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반면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2008년부터 올해까지 상위 10%의 임금이 3.6% 오르는 동안 하위 10%는 1.8%밖에 오르지 않았다”며 “임금 불평등을 축소하려면 저임금 계층의 임금을 끌어올려야 하고, 최저임금 현실화는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최저임금처럼 임금 최고액도 법으로 정하는 최고임금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속 진영을 넘나드는 발언도 나왔다. 진보 측 토론자로 나선 박태주 노사정서울모델협의회 위원장은 “노동시장의 개혁은 노조의 역할과 분리될 수 없고, 특히 산별교섭체제의 확립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현재 노동시장의 문제는 외부의 기술 진보와 4차 산업혁명 등 메가트렌드 변화와 직결돼 있는데 산별노조가 이런 변화에 대응할 만한 정책적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대표적인 진보 학자다.

반면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이사장은 진보 측 토론자인 김 연구위원이 제안한 ‘최고임금제 도입’에 찬성했다. 김 이사장은 “임금은 적게 주고, 회사는 빚에 시달리는데 경영 능력도 없으면서 수십억원을 챙겨가는 경영자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이런 불균형을 해소할 방안을 더 적극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보수-진보를 떠나 참석자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꼬인 실타래를 풀어가자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최 전 상임위원은 “현 정부가 임기 중에 노동개혁을 완수한다는 성과주의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며 “일단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과제는 올 정기국회에서 우선 처리하고, 비정규직 고용개선 방안 등은 별도의 초당적 전문가위원회를 만들어 근원적인 해결책을 찾자”고 제안했다. 김 연구위원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그는 “국회가 중심이 돼 노동개혁 과제를 논의하는 한시적 기구를 만들고 합의된 사안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빅딜(Big Deal) 대신 스몰딜(Small Deal)을 반복하며 천천히 접점을 찾자”고 말했다.

글=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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