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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 위기’에 갇힌 한국 대학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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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호 1 면

싱가포르 서쪽 끝 광활한 녹지대에 자리 잡은 난양공대(NTU)는 1991년 개교한 신생 대학이다. 하지만 영국의 대학평가기관인 QS는 지난해 세계 대학 평가에서 NTU를 13위, 올해 아시아권 평가에서 3위로 평가했다.


NTU 급성장의 배경에는 외국계 총장 영입을 통한 과감한 대학 개혁이 자리 잡고 있다. NTU는 2007년 스웨덴 출신으로 노벨화학위원회 대표를 역임한 생화학자인 안데르손 박사를 부총장으로 영입했다. 2011년에는 그를 총장 자리에까지 올렸다. 안데르손 총장은 취임 후 연구 성과가 낮은 대학교수 30%를 잘라내고 교수직의 테뉴어(정년 보장) 심사를 미국보다 엄격하게 바꿨다. 세계적인 외국 학자들도 대거 유치했다. NTU는 현재 교수진의 70% 이상, 대학원 석·박사 학생의 60%가 외국인이다. 강의실의 풍경도 급변하고 있다. 안데르손 총장은 최근 외신 인터뷰에서 “향후 5년 내에 대학 강의의 절반을 ‘거꾸로 교실(flipped learning)’로 채울 것”이라고 말했다. 거꾸로 교실이란 학생이 동영상 강의를 미리 들은 뒤 강의실에서는 토론수업을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NTU뿐 아니다. 싱가포르국립대는 지난해 QS 세계 대학 순위에서 12위에 올랐다. 아시아권 평가에서는 2014년 이후 올해까지 3년 내리 1위를 지키고 있다. 인구가 540만 명에 불과한 도시국가 싱가포르가 이뤄 낸 성과다.


반면 한국 대학은 ‘갈라파고스(Galapagos·고립)’적 위기에 놓여 있다. 서울대(2015년 세계 36위)와 KAIST(43위)·포스텍(포항공대·87위) 등이 비교적 선전하고 있지만 도시국가 수준인 싱가포르와 홍콩을 따라가기에도 역부족이다. 특히 고려대와 연세대 등 상위권 사립대들은 모두 100위권 밖이다. 하지만 한국 교육 당국과 대학들의 대응은 아직도 ‘우물 안 개구리’ 수준이다. 미국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 등 세계 명문 대학들이 수년 전부터 대규모 공개 온라인 강좌 무크(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에 뛰어들어 ‘국경 없는 강의실’의 시대가 열리고 미네르바스쿨 등 미래형 대학들이 속출하고 있는 현실과 비교된다.


한국 대학들은 온통 국내용 대학 구조조정에만 매몰돼 있다. 교육부가 지난 5월 선정·발표한 프라임 사업(산업 연계교육 활성화 선도대학 사업)이 그것이다. 교육 전문가들은 프라임 사업이 국내 기업의 단기적 수요에만 부응해 졸속·탁상행정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실제로 프라임 사업에 선정된 21개대 중 수도권은 5개, 나머지 16개는 대구·경북권, 동남권, 충청권, 호남권, 제주·강원도권 등 5개 권역에 나눠먹기식으로 배분됐다. 심지어 부실 대학으로 판정받은 대학에도 지원금이 결정됐다.


일부 상위권 사립대는 뒤늦게 변화의 몸부림을 시작했다. 고려대는 2018년 미래대학을 출범할 계획이다. 포스텍은 국내 대학 최초로 무크를 학점으로 인정하는 등 미래교육을 시작했다. 하지만 정원이 줄어드는 인문·사회계 교수·학생들의 반발이 심해 계획대로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전상인 교수는 “한국의 고등교육정책은 무지(無知)와 사회주의적 평등, 포퓰리즘에 매몰돼 있다”며 “지금과 같은 나눠먹기식이 아닌 선택과 집중의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한국 대학은 조만간 카오스(Chaos·혼돈)에 빠져들 것”이라고 말했다.


▶관계기사 4~5면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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