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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최고 존엄’ 겨냥한 미국의 대북 인권 제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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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국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인권범죄자’로 낙인 찍는 초강수를 뒀다. 미 정부는 6일(현지시간) 북한에서 자행되고 있는 광범위한 인권 유린의 책임자로 김 위원장을 지목하고, 제재 리스트에 그의 이름을 올렸다. 미국이 북한의 ‘최고 존엄’을 제재 대상에 포함시킨 것도 처음이지만 인권 유린 혐의만으로 제3국 지도자를 제재 대상에 올린 것도 처음이다. 북·미 관계는 물론이고 남북관계에도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임기를 6개월 남겨두고 나온 이번 조치는 지난 2월 발효된 대북제재강화법에 따른 것이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직후 제정된 이 법 304조에 따라 국무부가 북한 내 인권 유린과 내부 검열에 책임이 있는 인사들의 구체적 행위를 파악해 의회에 보고하자 이를 토대로 재무부가 즉각 김 위원장 등 15명과 여덟 곳의 기관을 제재 리스트에 올린 것이다. 오바마판(版) 대북 압박 조치의 완결판이라고 할 만하다.

북한의 인권 탄압이 어제오늘 문제는 아니다. 매년 발행되는 미국의 인권보고서에서 북한은 늘 최악의 인권탄압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고문·처형·강간·성폭행이 수시로 자행되는 정치범수용소 등 북한 내 인권 유린 실태를 담은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인권 상황을 국제사회에 고발하기도 했다. 미 국무부의 이번 보고서는 이미 제기돼 있는 혐의들을 취합해 정리한 것으로, 특별히 새로운 내용이 들어간 것은 아니다. 제재 리스트에 올라간 김 위원장 등 개인이나 기관에 대한 제재 내용도 미국 내 자산 동결이나 미국 입국 금지가 다여서 특별히 실효성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김정은=인권 탄압자’로 낙인 찍어 미국이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은 북한 정권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은 이를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해 강력히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추가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등 도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럴수록 미국의 대북 압박이 더욱 강화되는 악순환을 피하기 힘든 상황이다.

미국은 이번 조치에 대해 핵·미사일 도발과는 별도로 북한 인권을 겨냥한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조치의 근거가 된 대북제재강화법이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응해 제정됐다는 점에서 문제의 근원이 북한의 핵 개발에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인권이 북한의 ‘아킬레스 건’이라는 건 누가 봐도 명백한 사실이다. 인권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의 문제라면 핵은 한반도 평화와 국제 비확산 체제의 문제다. 미국으로선 둘 다 양보할 수 없는 가치다.

김 위원장은 미국의 초강수에 초강수로 맞서기 전에 북한이 처한 상황을 냉정히 돌아봐야 한다. 버티면 버틸수록 힘들어지는 것은 북한 주민들이다. 진정으로 북한 인민을 위한다면 인권 상황을 개선하고, 핵 문제에 대해 일대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