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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분식회계 하면 기업 문 닫을 각오하게 처벌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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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금융위원회가 분식회계 처벌 규정을 강화한다면서 여전히 뜨뜻미지근한 방안을 들고 나왔다. 그제 금융위는 ‘자본시장조사 업무규정’을 개정해 분식회계를 저지른 기업에 부과하는 과징금을 대폭 늘리기로 했다. 이전 규정에 따르면 아무리 오랫동안 분식회계를 저질러도 동일한 사안은 한 차례로 간주했다.

예컨대 기업이 허위 작성한 사업보고서와 증권발행신고서를 수십 번 발행해도 기존에는 과징금이 최고한도 20억원에 그쳤다. 하지만 금융위 고시에 따라 새 규정이 내주부터 시행되면 보고서와 신고서가 발행될 때마다 위반 행위가 이뤄진 것으로 보고 1회당 최대 20억원씩 부과된다. 10회면 200억원에 이른다. 대우조선해양은 분식회계가 확인됐는데도 규정을 소급할 수 없어 과징금이 20억원에 그친다.

과징금이 분식 규모에 비해 코끼리 비스킷처럼 작아서는 분식회계의 유혹을 차단하기 어렵다. 분식 규모가 클수록 유혹이 커지기 때문이다. 대우조선은 2012~2014년에 걸쳐 5조4000억원대의 분식회계를 통해 4500억원의 이익을 낸 것으로 허위공시했다. 이를 내세워 45조원을 대출받고, 직원들에게 4900억원의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과징금이 솜방망이다 보니 회계법인의 감시견 역할은 무용지물이다.

미국·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에선 일벌백계를 하고 있다. 한 번 걸리면 회사 문을 닫을 정도다. 대형 에너지 회사 엔론은 바로 문을 닫았고, 최근 도시바는 74억 엔(약 850억원)의 과징금 폭탄을 맞았다.

금융위는 이런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분식회계 처벌 기준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부실기업이 과징금을 내는 게 차라리 값싸다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시장법에 명시돼 있는 ‘20억원 상한선’ 규정도 차제에 상한선을 올리는 방향으로 손질하길 바란다. 분식회계를 하면 기업이 문 닫을 각오를 하게 해야 해운·조선 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있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