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직원도 주 1~2일 재택근무…아이 두셋은 기본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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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회의 중인 듀폰코리아 직원들. 이 회사는 양성평등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여성 임원 비율이 20%를 훌쩍 넘겼다. [사진 신인섭 기자]

지난 1일 서울 강남구의 듀폰코리아 사무실. 화학제품 전문 회사지만 입구에서부터 여성 이름이 적힌 임원실이 여럿 보였다. 사무실에서 마주친 직원도 남녀가 엇비슷했다. 이곳의 여성 직원 비율은 10명 중 3명(29%). 더 두드러지는 건 여성 관리자·임원 비율이다. 부장급 이상 28%, 상무급 이상 24%로 전체 직원 비율과 큰 차이가 없다. 여성 임원 비율이 기껏해야 한 자릿수인 여타 기업들과 대조적이다. 김숙경 상무는 “해마다 여성 임원 목표치를 상향 설정하는 등 양성평등을 장려하는 사내 문화가 정착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듀폰코리아, 여성 임원 비율 24%
정규직도 파트타임 유연근무 가능
포스코, 직장어린이집·수유실 운영
신세계·KT는 육아휴직 1+1년 보장
여가부 “양성평등 지원 늘려나갈 것”

양성평등이 뿌리를 내린 건 가족 친화적 제도의 영향이 크다. 재택근무와 파트타임 정규직, 유연근무제 등 다양한 형태의 근무가 활성화돼 있다. 한 달 내내 집에서 일하거나 정규직 지위를 유지하는 대신 하루 4시간·6시간 근무도 가능하다. 출퇴근시간과 육아휴직 사용도 온전히 본인의 선택이다. 아이를 챙겨야 하는 엄마·아빠 직원들이 이를 주로 활용한다. 9세·5세 아이를 둔 이화영 차장도 재택근무를 종종 이용한다고 했다. 그는 “6~7년 전만 해도 상사 눈치 때문에 주저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회사에서 계속 교육을 실시하고 직원들도 용기를 갖고 적극 나서면서 자유로운 근무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의 근무 만족도도 높다. 가족을 챙기려고 일주일에 하루 이틀 집에서 일하는 남성 직원이 상당수다. 전 직원을 통틀어 자발적 퇴사는 연간 2~3명이며 이직률도 5% 미만이다. 올 10월 둘째 출산을 앞둔 김아진 부장도 ‘아이 때문에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란 고민을 하지 않는다. 지난달부터 재택근무 중인 그는 “출산·육아 부담이 작아서 그런지 아이를 둘·셋 가진 동료가 많다. 여성이 다니기 좋은 회사가 결국 남성에게도 좋은 회사라는 말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듀폰코리아처럼 양성평등이 정착된 기업엔 어떤 특징이 있을까. 이들 기업은 가족 친화적 제도 활성화, 여성 인재 육성 프로그램 운영, 여성 임직원 증가 등 ‘3박자’를 갖춘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가 여성가족부의 ‘여성 인재 활용과 양성평등 실천 태스크포스’(142곳 참여)의 우수 기업인 듀폰코리아와 포스코·신세계·한화·KT 등 5곳을 분석한 결과다.

포스코는 직장어린이집과 수유실을 설치하고 여성 리더십 교육을 4년째 시행 중이다. 이에 힘입어 여직원은 해마다 10% 이상 꾸준히 늘고 있다. 한화는 고위 여성 인력을 육성하는 ‘WITH 콘퍼런스’를 개최하고 출산·육아기엔 인사 평가상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신세계와 KT에선 법정 육아휴직(1년)에다 추가로 1년을 쓸 수 있다. 신세계는 경력단절 방지 차원에서 출산휴가·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하면 희망 사업장에 우선 발령하는 제도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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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 문화는 점차 확산되고 있다. 여가부에 따르면 태스크포스 참여 기업들의 여성 임원 비율은 2013년 5.5%에서 지난해 8.2%로 늘었다. 여성위원회 운영 비율(30%→52%), 남성 육아휴직자 비율(4.8%→7.4%) 도 증가했다. 4급 이상 여성 공무원, 공공기관 여성 임원 비율이 느는 등 공공 부문의 변화도 감지된다.

정부도 여성 고용과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을 돕는 새일센터는 지난해 147곳까지 늘렸다. 국공립·직장어린이집도 지난해 3414곳으로 전년 대비 7.3% 늘어났다. 고위직에 진출할 여성 인재 데이터베이스도 8만2000명(4월 기준)을 확보했다. 최성지 여가부 여성정책과장은 “양성평등 문화가 빨리 자리 잡도록 지원해 저출산현상 해소와 여성의 경제 참여 확대를 이끌어 내겠다”고 말했다.

글=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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