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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글쎄요, 언제 나올지”…금감원 자신도 모르는 대우조선 회계감리 결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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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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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경
경제부문 기자

“글쎄요. 아직 조사할 게 많아서 언제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습니다. 최소 1년 이상 걸리니까요.”

“감사원·검찰과는 기준 달라서…”
재판 진행될 때 결과 나올 가능성
STX·대우건설 때처럼 뒷북 우려
전문가 “패스트트랙 도입 고려를”

대우조선해양 회계감리 진행 경과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금융감독원 담당자의 답변이었다. 이를 토대로 역산하면 대우조선 회계감리 결과는 올해 12월 이후에나 나올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부터 7개월째 대우조선의 분식회계 여부에 대한 특별 회계감리를 하고 있다.

금감원 일정대로라면 회계감리 발표가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이미 지난달 감사원 감사에서 1조5000억원, 검찰 수사에서 5조4000억원의 분식회계 혐의가 드러났다. 12월 이후엔 대우조선 분식회계 혐의에 대한 법원 재판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금융권에서 ‘뒷북 회계감리’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금감원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감사원과 검찰은 고의적인 회계부정을 분식으로 추산하지만 금감원은 과실로 인한 분식도 포함해서 계산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다”는 논리다.

금감원의 이런 해명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분식회계 규명이 급박했던 ‘골든타임’ 6개월을 놓치고 난 뒤 회계감리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타이밍은 대우조선 새 경영진이 해양플랜트 손실을 2분기 실적에 반영하겠다고 한 지난해 6월 25일(정성립 신임 사장 기자간담회)이었다. 분식회계 논란이 커졌지만 금감원은 “대우조선이 2분기 실적을 공시할 때 감리 여부를 판단하겠다”며 결정을 뒤로 미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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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기회는 한달 뒤인 7월 29일 대우조선이 3조318억원의 적자를 공시했을 때였다. 금감원은 “회계법인 실사 결과가 나오면 결정하겠다”며 말을 바꿨다. 산업은행이 삼정회계법인에 의뢰해 진행 중이었던 대우조선 실사를 두고 한 얘기였다. 그때부터는 ‘함흥차사’였다.

금감원은 그로부터 4개월 뒤인 11월 17일 회계법인으로부터 실사 결과를 통보 받은 뒤 12월 10일 회계감리를 시작했다. 감리 착수 근거는 “과거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손실이 있다”는 실사보고서 내용이었다. 그러나 금융권 관계자는 “추정 손실을 근거로 삼을 거였으면 4개월이나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대우조선 부실이 처음 드러난 지난해 6~7월에 회계감리에 착수했다면 지금쯤 결과를 발표할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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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의 뒷북 회계감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STX조선해양·대우건설 분식회계를 확정 짓는 데도 1년6개월 이상이 걸렸다. 당시에도 회계감리 제도의 모순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금감원은 움직이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더 이상 회계감리 제도 개혁을 미뤄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우선 과제는 사전 모니터링 시스템의 강화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이 해양플랜트 손실을 공개했을 때 금감원이 합리적 의심만 했더라도 대우조선의 부실을 사전에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요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 공조 등을 통해 감리 기간을 단축하는 ‘패스트트랙’ 제도 도입도 고려할 만하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겸임교수(전 고려대 총장)는 “절차에 얽매이다 버스 떠나고 손 흔드는 우를 범해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2의 대우조선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금감원이 이런 조언을 토대로 회계감리 제도 개혁에 나서야 한다.

이태경 경제부문 기자 uni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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