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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를 통한 성장도 가치 있고 소중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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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수
JTBC 디지털뉴스룸 부장

월드컵 축구 대회의 역사를 얘기할 때 종종 거론되는 두 선수가 있다. 라이베리아의 조지 웨아와 웨일스의 라이언 긱스. 이들은 ‘세계 최정상급 기량을 갖추고도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지 못한 축구선수’라는 카테고리에 묶인다. 출전만으로도 축구선수에겐 최고 영광이라는 월드컵. 둘은 4년마다 찾아오는 그 지구촌 축제를 관중석에서 또는 TV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었다. 축구 약소국에서 태어난 불세출 스타의 슬픈 운명이라 해야 할까. 월드컵 개근팀 브라질 등 본선 진출이 다반사인 나라 선수들은 팀과 동료들에게 깊이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웨아와 긱스 얘기를 꺼낸 건 ‘축구 신의 재림’이라는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 얘기를 꺼내기 위해서다.

메시가 속할 카테고리를 만든다면 ‘세계 최정상급 기량을 갖췄고 최정상급 국가대표팀에 속했지만 우승하지 못한 축구선수’가 될 것 같다. 지난달 26일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 결승전에서 메시의 아르헨티나는 승부차기 끝에 칠레에 져 준우승했다. 소속팀 FC바르셀로나에서나, 연령별 대표팀이 출전하는 올림픽(23세 이하)과 청소년대회(20세 이하)에선 늘상 거머쥔 우승컵인데, A팀(성인 남자대표팀) 유니폼만 입으면 인연이 닿지 않는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2007·2015·2016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메시와 아르헨티나는 준우승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이나 2019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하면 되지 않을까. 그건 현재 불가능하다. 메시는 자신의 승부차기 실축으로 준우승한 뒤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메시 얘기를 한 건 요아나 푹스라는 아르헨티나의 한 여교사 얘기를 위해서다.

푹스는 지난달 28일 메시의 은퇴 번복을 요청하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렸다. 이 글은 현지 언론에 소개되면서 많은 이의 심금을 울렸다고 한다. 대강의 내용은 이렇다. 푹스는 처음 “축구팬이 아닌 아르헨티나 교사의 한 사람으로서 글은 쓴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어 “학생들은 지금 영웅이 포기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정말 이대로 은퇴할 경우 ‘승리만 가치 있게 여기고 패배를 통한 성장의 가치는 무시하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썼다. 또 “학생들이 ‘이 나라는 승자와 1등한테만 관심 있다’ ‘ 2등은 패배자’ ‘누군가의 가치는 우승했느냐에 달렸다’ ‘경기에서 지면 영예를 잃는다’ 등의 생각을 하지 않게 해달라”며 메시에게 은퇴 번복을 요청했다. 푹스 얘기를 인용한 건 사실 다음 얘기로 이어가기 위해서다.

리우 여름 올림픽 개막이 33일 남았다. 많은 선수가 태릉과 진천 선수촌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들이 꼭 금빛 담금질을 해야 할까. 은빛 내지 구릿빛 담금질이면 어떤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푹스 선생님 말처럼 승리만 가치 있는 게 아니다. 패배를 통한 성장도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이다. 게다가 이게 메시 같은 운동선수한테만 적용되는 얘기도 아닐 것이다. 이미 실패를 했거나 언젠가 실패할 수도 있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얘기다.

장혜수 JTBC 디지털뉴스룸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