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금요일] 산업혁명 주역이 환경오염 주범으로…석탄경제 퇴장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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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성분이 담긴 돌이 철광석이고, 석회가 뭉친 돌은 석회석이다. 철광석은 쇠로, 석회석은 시멘트로 거듭나 인류 문명 발전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광물 못지않게 ‘산업혁명의 주역’으로 쓰이던 돌멩이가 있다. 나무 같은 식물이 물속에 잠겼다 굳은 석탄(Coal)이다. 지질시대의 육생식물이나 수생식물이 물속에 쌓인 뒤 가열과 가압작용을 받아 생성된 흑갈색의 가연성 암석이다.

온실가스 LNG의 2.5배, 초미세먼지도 배출
가격 싸 경제성 좋지만 부작용 커 퇴출 위기
영국 2025년까지 모든 석탄발전소 폐쇄

석탄은 아주 옛날부터 인간이 사용하던 화석연료자원이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사실로는 약 3100여 년 전 중국에서 석탄을 채광해 사용한 것이 최초다. 서양에서도 로마시대부터 사람들은 석탄을 이용할 줄 알고 있었다. 다만 기술적 한계로 그다지 인기 있는 연료가 아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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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토]

바이오매스(생물연료)에서 석탄으로 에너지원의 사용이 획기적으로 전환된 계기는 1709년 영국의 에이브러햄 다비가 코크스(cokes) 제철법을 발명하면서다. 코크스란 석탄에서 수분과 유황을 비롯한 잡다한 성분을 제거해 순수한 상태에 가깝게 만든 탄소 덩어리다. 이 코크스는 대규모 용광로의 시대를 열었다. 산업 발전의 역군으로서 석탄이 활용되는 순간이다.

이런 석탄의 운명이 300여 년 만에 흔들리고 있다. 산업혁명의 발상지 영국에서는 5월 9~15일 희귀한 기록이 세워졌다. 7군데 화력발전소가 발전기를 돌릴 때 단 한 차례도 연료로 석탄을 사용하지 않아서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영국은 석탄 동력의 발전소를 건설한 세계 최초의 국가인 동시에 100년 만에 석탄발전소를 모두 닫을 최초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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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이미 19세기에 석탄을 산업용 연료로 활용하는 석탄 경제로 들어섰다. 1800년대 영국은 전 세계 석탄의 80%가량을 생산했다. 전통적인 소규모 생산 경제에서 대량 생산 시대로 이행하는 데 석탄은 중요한 동력이 됐다. 재생 전기 전문기업인 굿에너지의 줄리엣 데번포트 대표는 “석탄은 산업혁명의 골격을 형성하고 영국을 21세기 안으로 밀어 넣었던 주된 연료였다. 하지만 이제는 작별을 고해야 할 시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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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환경 때문이다. ‘온실가스의 주범, 미세먼지의 주범.’ 지금 석탄은 절대악처럼 여겨진다. 없애야 한다는 인식이 퍼진다. 석탄이 인류의 유산인 지구 환경에 해롭다는 건 틀린 말이 아니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전원(電源)별 온실가스 배출량을 지수화해 비교한 결과 액화천연가스(LNG)가 1이라고 했을 때 무연탄은 2.52, 유연탄은 2.27에 달한다. 유류(중유)는 1.94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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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미세먼지(PM2.5·입자 크기가 2.5㎛ 이하인 먼지) 배출 비율은 공장, 생산시설 같은 사업장이 41%로 가장 많지만 발전소도 14%에 달한다(국립환경과학원 조사). 여기서 발전소는 대부분 석탄화력발전소다.

하지만 경제성을 놓고 보면 석탄은 효율적 자원이다. 지난해 전원별 연료비 단가(한국 기준)를 살펴보면 전기 1kWh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연료비는 유연탄과 무연탄이 각각 37.25원과 53.26원이었다. 반면에 유류를 쓰면 161.08원이, LNG를 쓰면 106.75원이 든다. 원자력(5.16원)을 제외하면 석탄은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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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산업혁명 당시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는 모습을 그린 그림. [중앙포토]

각국의 고민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석탄은 경제성 면에서 뛰어난 자원이지만 환경오염이라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게 크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12월 파리기후협약이 체결되면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등 195개국은 2020년부터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시대 이전에 비해 섭씨 1.5도 이하로 제한하도록 노력한다는 내용이다. 한국은 2030년 배출 전망치(BAU) 대비 37% 감축이 목표다. 결국 거의 모든 나라는 석탄 에너지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환경오염이 덜한 신재생 에너지 등의 개발에 힘써야 할 처지가 됐다.

이미 그런 노력은 시작됐지만 대부분 선진국에서다. 영국 정부는 2025년까지 모든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기로 지난해 11월 결정했다. 영국항만협회의 데이비드 화이트헤드는 “석탄 사용 중단이 갑자기 이뤄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시장의 재조정 과정”이라고 말했다. 영국은 지난해 12월에는 마지막으로 남은 지하탄광인 ‘켈링리 탄광’을 폐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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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나 캐나다에서도 지난 5년간 석탄 소비량이 줄었다. 온실가스 감축 노력 등에 힘입은 결과다. 글로벌 에너지기업 BP가 최근 발표한 세계 에너지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석탄 소비는 9억7920만t으로 1982년 이후 33년 만에 처음으로 10억t 아래로 감소했다. 이는 2010년보다는 12.2% 줄어든 수치다. 이 기간에 미국의 석탄 소비량은 24.5% 줄었고, 캐나다에서도 석탄 소비량이 21.6%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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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한국의 전체 전력 생산량 중에서 석탄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39%에 달한다. 현재 53개의 화력발전소가 가동되고 있다. BP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석탄 소비량은 2010년 7590만t에서 지난해 8450만t으로 오히려 11.2% 증가했다. 한국에서는 2027년에도 여전히 석탄발전이 전체의 32.3%로 가장 높은 전력원일 것으로 예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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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내 석탄 소비(2015년 용도별 소비 비중)는 발전용과 산업용이 각각 60.7%, 38.2%를 차지한다. 발전용 중 대부분의 전기는 화력발전(64.8%)에서 나온다. 수력으로도 전기를 생산할 수 있지만 석탄·석유·가스 등의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화력발전소가 대부분이다. 화력은 크게 기력(汽力)과 복합화력으로 분류된다. 이 중 기력은 석탄(28.8%), 석유(7.7%)·LNG(0.4%) 등을 연료로 증기터빈을 돌려서 전기를 만든다.

석탄발전소에 들어가는 석탄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한다. 이제는 연탄을 사용하는 집이 별로 없는데도 한국이 석탄 수입량 세계 4위, 1인당 석탄 소비량 세계 5위가 된 이유다. 전기를 싸고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는 목표를 추구하다 보니 나온 결과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발표된 7차 전력수급계획에 따르면 한국은 2029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를 20개 더 짓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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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토]

아직 한국은 석탄을 포기할 수 없는 나라다. 석탄을 무조건 없애자는 구호는 공허하다. 문제는 환경을 덜 오염시키는 기술이 아직 부족하다는 점이다. 윤용승 고등기술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존 기술로도 기술적 저감은 가능하나 사회적으로 허용될 수준으로 이산화탄소(CO2)를 싸게 줄이는 기술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필요한 건 이산화탄소 포집저장기술 등 석탄화력발전의 효율성을 증대시키고 탄소배출 저감 운영기술을 포함한 각종 친환경 기술의 개발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이상열 부연구위원은 “석탄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단기적으로 석탄 사용량을 감축하기는 어렵지만 온실가스 감축에 대응하려면 중장기적으로 석탄의 비중을 줄여야 한다. 지속 가능한 에너지믹스(원자력·석탄·LNG가 발전에 골고루 사용될 수 있도록 에너지원별로 담당할 발전 비중을 정하는 것)를 구성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채연 기자 yamfl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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