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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부양보다는 장기전 대비···정부 '3% 성장' 접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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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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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 28일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임종룡 금융위원장,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홍윤식 행정자치부 장관, 유 부총리,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김경환 국토교통부 제1차관. [사진 김현동 기자]

28일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 나서기로 한 직접적인 계기는 ‘재정절벽’ 우려다. 수출 위축과 내수 부진에 연초부터 경기가 불안한 흐름을 보이자 재정을 최대한 상반기에 당겨쓰는 ‘재정 조기집행’ 확대로 대응했다.

예상보다 적은 ‘10조 추경’ 왜
상반기 재정 당겨써도 경기 안 살고
브렉시트까지 겹쳐 저성장 고착 우려
경기 끌어올리기보다 하락 방어용

하지만 경기의 물꼬를 돌리지 못한 채 하반기 재정 부족이란 상황에 직면했다. 결정적으로 지난달 고용동향이 발표되면서 추경에 부정적이었던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기도 전에 울산·거제 등의 실업률이 급등하는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여기에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라는 예상 못한 충격까지 가세하면서 경기가 고꾸라질 위험은 더 커졌다. 이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내리며 ‘재정 역할론’을 제기하고, 야당에서조차 추경 편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렇게 결정된 추경은 경기를 적극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공격적 성격보다는 하락을 최대한 막는 방어적 성격이 짙다. 규모부터 그렇다. 일각에선 20조원대 ‘수퍼 추경’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결론은 10조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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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승 경제정책국장은 “국채를 발행하지 않고 편성할 수 있는 수준에서 결정된 것”이라고 배경을 밝혔다. 애초부터 나랏빚을 늘리는 수준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얘기다. 정부는 우선 지난해 쓰고 남은 세금(세계잉여금) 1조2000억원을 활용할 계획이다. 여기에 올해 예상보다 잘 걷히는 세금을 추경으로 돌리겠다는 복안이다.

정부는 추경을 하면서도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는 2.8%로 내려 잡았다. 예년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그간 정부는 ‘3%대 성장률’에 상당한 의미 부여를 해왔다. 정부가 성장률 눈높이를 낮출 경우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위축돼 자칫 저성장의 고착화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정부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산 사태가 터진 지난해에도 11조6000억원의 추경을 편성하며 성장률 목표치를 3.1%로 제시했다. 하지만 지난해 실제 성장률은 2.6%에 그쳤다.

이 국장은 “무리해서 3%대로 끌어올리기보다는 경기 충격을 줄여가면서도 장기전에 대비하자는 데 정부 내 컨센서스가 모인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로서도 구조적 저성장, 위기의 일상화로 압축되는 ‘뉴노멀(New normal)’을 현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셈이다. 내년 성장률은 3.0%로 제시됐다. 하지만 브렉시트의 여파 등은 미처 감안되지 않은 전망이다. 사실상 내년도 3% 달성이 쉽지 않다는 의미다.

눈높이를 낮춘 데는 ‘여소야대 국회’라는 정치적 현실도 배경이 됐다. 빚을 늘리며 추경에 나설 경우 국회 논의 과정에서 ‘경제 실정론’이 부각되며 논란이 커질 수 있다는 재정 당국 내 우려가 컸다. ‘추경이 상시화되고 있다’는 비판도 부담이었다.

추경 편성은 2013년, 2015년에 이어 박근혜 정부 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다. 2014년 단 한 해만 추경이 없었지만 당시에도 기금 지출, 보증 확대 등을 통해 46조원 규모의 재정 보강 패키지가 동원됐다. 저성장 장기화가 근본 원인이라지만 정부가 과도한 낙관적 성장 전망을 하고, 재정 당겨쓰기를 관례화한 것도 추경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족쇄’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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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장률을 일단 접는 대신 정부는 ‘일자리 확대’ 등에 예산을 집중해 체감도를 높이겠다는 입장이다. 이날 발표에서 추경을 ‘일자리·민생안정’용으로 못 박은 이유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국회 논의 과정에서 자칫 예산 나눠 먹기로 변질되는 것을 막고, 집행 속도도 최대한 높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례적 추경 편성에도 ‘반짝 효과’로 그쳤던 만큼 향후 경제정책의 초점이 단기 부양보다는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리는 구조개혁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병호(한국재정학회장) 부산대 교수는 “당장 경기 부양은 불가피하지만 장기적으로 구조조정과 신산업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는 신호를 보다 강력하게 시장에 줘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조민근·하남현 기자 jming@joongang.co.kr
사진=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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