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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NIE] 사적인 음담패설이라고요? 말의 힘은 훨씬 크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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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단톡방 언어 성폭력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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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고려대 게시판에 ‘동기, 선배, 새내기를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카카오톡방 언어 성폭력 사건을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대자보에는 1년여간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여학생들을 ‘언어 성폭행’해온 고려대 남학생들에 대한 고발이 담겨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이른바 명문대생들의 의식 수준까지 이 정도면 우리 사회 정말 심각한 거 아닌가”“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여성혐오가 드러났다”며 분노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한편에선 ‘언어 성폭행’ 자체는 문제지만 ‘사적인 공간에서의 대화까지 문제 삼아야 하는 건가’는 문제 제기도 나온다.

1년간 A4 700장 분량의 여성혐오 대화

고려대 카카오톡 대화방 언어 성폭력 사건 피해자 대책위원회(대책위)가 공개한 단체 카톡방 대화는 다음과 같다. 한 남학생이 새터(신입생 오리엔테이션)를 앞두고 “아 진짜 ‘새따’(새내기 따먹기)는 해야 되는데”라고 말하면 “형이면 한 달이면 가능하다”고 답하는 식이다.

새터에 술을 가져갈지 묻자 “이쁜 애 있으면 샷으로 X나 먹이고 쿵떡쿵”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술을 먹여 취하게 만든 뒤 성관계를 가지라는 의미다. 이 밖에도 지하철에서 몰래 촬영한 여성의 사진을 공유하거나 “맛본다” “씹던 껌”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여성을 성적 욕구 해소의 대상으로 표현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내용은 ‘내부 고발’에 의해 드러났다. 이 카톡방 구성원은 교양수업을 통해 만난 고려대 남학생 8명이다. 그중 한 명이 언어 성폭행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대책위에 대화 내용을 제보한 것이다. 대책위에 따르면 이들이 1년간 나눈 대화는 A4용지 약 700장 분량이며 이 중 대부분이 여성혐오 발언으로 이뤄져 있다. <중앙일보 6월 14일자 ‘소라넷’ 빰 치는 고려대 남학생 카톡방>

파장은 컸다. 각종 시민단체에서 연달아 비난 성명을 냈으며 온라인상에는 해당 남학생들의 신상 정보가 공개되기도 했다. 고려대는 지난 15일 염재호 총장 명의로 된 입장 발표에서 “언어 성폭력 사건은 고려대가 추구하는 교육철학에 근본적으로 위배되는 매우 심각한 사건”이라며 “교육부총장이 주재하는 특별 대책팀에서 철저히 사건을 조사하고 학칙에 따라 엄정한 사후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가해자로 지목된 남학생들 역시 ‘○○반 카카오톡 언어성폭력 가해자의 사과문’이란 제목의 대자보를 교내에 붙이고 잘못을 인정했다. 이들은 대자보에서 “언어 성폭력에 대한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형사 처벌을 포함한 징계 역시 달게 받겠다”며 “저희가 했던 발언을 두 눈으로 다시 읽었을 때, 그제야 저희는 후회했고 반성했다”고 밝혔다. <중앙일보 6월 15일자 ‘고려대, 남학생 카톡 성희롱 사건 관련 특별대책팀 꾸려 진상조사’>

특정 대학, 특정 학생만의 문제가 아냐

대화 내용이 공개되면서 고려대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지만 전문가들은 “특정 대학, 특정 학생이 아니라 대학가에 만연한 여성차별, 여성을 같은 인간이기보다 성적 대상으로 보는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학전공 교수는 “신입생 환영회를 보면 여전히 대학가에 군대문화, 여성혐오문화가 사라지지 않은 걸 알 수 있다”며 “여성혐오를 기성세대 문제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젊은 세대들도 남성 중심적인 문화에 젖어있다”고 말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역시 “시공간을 초월해 쉽게 얘기 나눌 수 있다는 점과, 말과 달리 기록이 계속 남는다는 메신저의 특성 때문에 대화방 속 여성폄하는 술집에서 친구들끼리 나눈 대화보다 더 오래 지속되고 확대 재생산된다”고 꼬집었다.

자문자답 내공쌓기

언어폭력과 물리적 폭력을 비교하고 이를 토대로 언어폭력의 문제점을 생각해보자.

자신과 다른 성, 즉 이성을 지닌 사람을 존중하기 위한 조건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선생님과 신문 속 교과서 읽기

생각을 바꾸는 말

우리는 머릿속에 든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말로 표현하다가 생각이 정리되는 것일까요. 어쩌면 이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물음과 같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앞의 경우만 생각하곤 합니다. 실제로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여전히 가능하답니다.

‘일일일선’(一日一善) 어릴 적 보이스카우트에서 매번 모일 때마다 외치던 구호입니다. 좋은 말이지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게 좀 이상합니다. 그냥 그것이 보이스카우트의 행동지침이라고 교육받거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기만 해도 되었을 법한데 굳이 오른손을 들고 큰소리로 외치라고 했으니까요. 아마 그 선생님들도 알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우리 입으로 반복해서 외치다 보면 그것이 우리의 의식을 바꾸고, 교육이나 강요로 행동하게 하는 것보다 효과적이라는 것을.

어떤 권력자들은 자신의 권력 밑에 다스리고 싶은 상대를 뜻대로 움직이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들의 의지를 반복해서 말하곤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세뇌라고 부르지요. 그러면 스스로 반복해서 말함으로써 스스로의 의식이 그렇게 변화하고 정하는 것은 자기세뇌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많은 학생들이 반문할 수 있습니다. 자신들만의 폐쇄된 공간에서 자기들끼리, 그것도 다 큰 성인 남자들이 비밀스럽게 떠든 음담패설이 뭐 그리 대수냐고, 그것이 무슨 잘못이 되느냐고요. 하지만 그렇게 반문하는 것은 말의 힘을 간과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여러 명의 입에서 반복되고 오래도록 지속되었다는 것은 그 대화에 가담했던 학생들의 의식이 그 말대로 바뀌고 변형되었다고, 적어도 그 말에 영향을 받았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도대체 그들이 스스로 세뇌시킨 내용은 무엇일까요.

본능만을 따른 말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성적 본능이 왕성한 시기의 청년들이 단지 본능에 충실할 뿐이었으니 그냥 눈감아주는 것이 어떠냐고.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요. 본능에 충실한 행동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며, 책망할 필요가 없는 것일까요.

본능에 충실한 행동을 문제로 삼지 말라는 주장은 인간을 기계와 전혀 다름없는 존재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마치 자동판매기에서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그 음료수가 덜컥하고 떨어지는 것처럼, 본능이 작동하면 그에 따른 행동은 필연적이며,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행동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사실 많은 철학자는 동물을 이처럼 고도로 발달한 기계로 간주했습니다. 동물은 이성을 지닌 인간과는 달리 전적으로 본능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지요. 이러한 사고방식은 우리의 상식과도 어느 정도는 맞아떨어집니다. 우리는 짐승들이 누군가를 공격했다거나, 혹은 재산을 훼손하였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을 ‘도덕적인’ 관점에서 책망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도덕적 기준을 버리고 본능에 따라서만 행동한 사람을 놓고 ‘짐승 같은 놈’이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런 표현에는 이미 굉장히 강한 책망이 들어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답지 못하고, 스스로를 짐승으로 전락시켰음을, 인격적으로 존중받아야 할 자신을 짐승의 위치로 격하시켰음을 책망하는 것이지요. 결국 우리가 인간이기에 본능만을 따른 행동은 결코 옹호 받거나 책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능보다 못한 말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그들의 행동이 단지 본능만을 좇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문제는 조금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짐승들에게 성(性)이란 무엇일까요. 짐승들은 오로지 종족 번식이 성의 목적입니다. 상대를 종족의 씨를 생산하는 대상, 그 이상으로도 이하로도 고려하지 않습니다. 물론 인간들의 성(性)에도 종족 번식은 매우 중요한 의미입니다. 하지만 즐거움과 인격적 사랑 나눔도 인간들의 성(性)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가치이자 의미입니다.

그 학생들의 말에는 조금 더 무서운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여성을 지배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폭력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여성을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는 먹잇감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지요. 그 단톡방에는 순수한 성(性)의 가치나 의미는 온데간데없고 집단적 폭력을 본질로 하는 왜곡된 성(性) 의식만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언행들이 ‘짐승 같은’보다 더 가혹한 ‘짐승만도 못한’ 행동이었는지 한 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문우일 세화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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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관 기자 kim.mink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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