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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지금이 개헌 추진할 때인지 국민투표로 묻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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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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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준
전 미국 연방하원의원

대한민국 20대 국회가 시작되자 개헌론이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 임기를 현행 5년 단임에서 미국처럼 4년 중임으로 하고, 대통령 책임제도 오스트리아식 분권형 대통령제로 바꾸자는 주장이다.

5년 단임제는 레임덕이 빨리 오기 때문에 4년의 첫 임기가 끝난 다음 국민 의견을 물어 4년을 더 재임하자는 제안이다. 미국에서도 버락 오바마 현 대통령까지 포함해 8년간 재임한 대통령은 44명 중 14명(31%)밖에 안 된다.

물론 에이브러햄 링컨이나 윌리엄 매킨리 같이 재선된 뒤 암살당한 경우도 있고 재선 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퇴한 리처드 닉슨의 경우도 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4선에 성공했지만 재임 중 서거했다.

그 뒤로 미 의회는 헌법 22조 개헌안(1947년 3월 21일)을 통과시켜 아무리 훌륭한 대통령이라도 8년 이상 재임하지 못하도록 못 박았다. 미국식 대통령 책임제 하의 4년 중임제는 가장 성공한 정치 제도 중 하나다.

기왕에 미국식으로 바꿀 바에는 아예 부통령 제도도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은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으면서 대외 무역에 의존하고 있어 외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교역 상대국들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대통령은 해외순방을 자주 다녀야 한다.

따라서 그동안 빈자리를 메워줄 파트너, 즉 부통령이 필요하다. 러닝메이트인 부통령은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하고 차기의 꿈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현 대통령을 성공시키려고 혼신의 힘을 쏟을 것이다.

실제로 나날이 복잡해지는 국제관계를 대통령 혼자 해결하기는 힘들다. 함께 상의할 파트너가 필요하다. 지금의 국무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한다. 따라서 임명권자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늘 조심하는 수직관계일 뿐이다. 진정한 의미의 파트너는 아니다. 지금 국무총리실을 운영하는 예산이면 부통령실도 충분히 운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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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통령을 두면 일부 의원이 주장하는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와 독일식 분권형 대통령제와 똑같은 개념이 되는 것이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은 외교안보를 맡고, 국회에서 뽑은 총리는 모든 내치를 맡는 것이 소위 오스트리아식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다.

이런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은 결국 대통령의 권한을 반으로 줄이고 국내 행정권마저 국회라는 정치권에 맡기자는 얘기다. 국회에 대한 신뢰가 바닥인데도 권력을 더 늘리자는 주장이다. 국민이 이런 주장을 이해할지 의문이다.

그러지 않아도 정당은 이미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다. 바로 공천권이다.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시장·군수·구청장까지 대한민국 구석구석의 선출직은 거의 모두 정당 공천이 필요하다. 지난 공천파동 때 우리 모두가 공천제의 폐해를 직접 경험했다.

대한민국은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라 정당으로부터 나온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당이 임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비례대표 의원까지 있지 않은가. 그러니 이 어마어마한 공천권을 가진 정당에 국내 행정권까지 맡기는 것은 결국 입법·행정을 거의 모두 장악하게 하는 일이다. 이는 민주정치의 기본 원리인 삼권분립의 정신에도 명백히 어긋난다. 이 때문에 분권형 대통령 제도는 아직 준비가 더 필요해 보인다.

지금 한국 사회는 어수선하다. 사방이 비리투성이다. 몇 조씩 세금이 ‘사기’당하고 있다. 살인·폭력 사건이 들끓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혼란을 바로잡아 경제 활력을 되찾고 청년 실업도 해결해야 한다. 이러한 때에 개헌에 에너지를 쏟는 것은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이다.

미국식 대통령 4년 중임제나 오스트리아식의 분권형 대통령제로 고치는 개헌이 뭐가 그리 급한가. 기어코 개헌을 추진하려거든 대한민국 헌법 72조에 규정한 대로 국민투표를 통해 그 필요성을 국민에게 직접 물어봐야 한다. 영국도 국민투표를 통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여부를 국민에게 직접 물었다.

이제 막 국회가 시작된 마당에 또 다른 권력 다툼의 소지가 큰 개헌을 하필 지금 해야 하는지를 국민투표로 국민에게 직접 물어 보자는 얘기다. 헌법 72조에 있는 국민투표는 해본 적이 없다는데 이번 기회에 우리도 다른 선진국처럼 국민투표를 통해 물어 보자. 나는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개헌 문제로 국론을 분열시키는 것은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김 창 준
전 미국 연방하원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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