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브렉시트 위기, 닥치면 강해지는 힘을 보여줄 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한 브렉시트(Britain+Exit)의 첫 주말이 지났다. 세계는 불확실성의 늪에서 숨을 죽이고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대처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브렉시트로 보호무역과 신고립주의가 향후 세계 정치·경제·사회의 한 흐름이 될 것이란 사실이다.

반세계화 흐름의 확산은 우리 경제에 새로운 과제들을 던져줄 것이다. 수출로 먹고산 한국 경제는 지금껏 세계화의 최대 수혜자였다. 반세계화는 한국 경제의 숨통을 조이는 충격이 될 수 있다. 브렉시트의 의미와 파장을 제대로 따지고 대처하는 국가적 역량이 요구된다.

우선 위기의 실체부터 알아야 한다. 브렉시트는 예전의 금융위기와 다르다. 금융 거품이나 실물 위기에서 비롯하지 않았다. 정치적 이슈가 부른 금융위기란 점에서 사상 초유다. 충격은 크다. 검은 금요일 하루에만 세계 증시에서 3000조원이 사라졌다. 우리 시장에서도 47조원이 날아갔다. 하지만 대응은 통상의 금융위기와 다를 수밖에 없다. 궁극적으론 선진국 간 정치적 해결이 돼야 위기가 가라앉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진국 정책 공조가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것이다. 이번 위기는 진앙지도 선진국이요, 시장 충격도 선진국이 컸다. 금융위기의 단골 손님이던 동남아 신흥국은 되레 선방했다. 미국·유럽·일본 등의 공조가 효율적으로 작동하면 신흥국 위기로의 확산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반대라면 우리에게 미칠 충격도 커진다. 이런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

따라서 장기화에 대비해야 한다. 영국에 이어 프랑스·네덜란드가 EU 탈퇴에 나서는 등 정치적 이슈가 금융 위기에 끝없이 자양분을 제공할 수 있다. 1~2년은 기본이고 수십 년간 반복되는 ‘위기의 일상화’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무엇보다 경제 체력을 단단히 다져놔야 한다. 기업 구조조정을 신속히 마무리하고 노동·공공 개혁 등 경제 체질을 바꾸는 데도 시간을 끌어선 안 된다.

외환 방패도 든든히 쌓아야 한다. 당장은 아니지만 한·미 통화스와프를 언제든지 재개할 수 있도록 미국과의 채널을 열어놓는 게 필요하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우리 경제와 외환 체력은 튼튼했지만 그것만으론 외환시장의 높은 파고를 견뎌내지 못했다. 요동치던 시장이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이후 급속히 안정을 되찾았던 점을 상기해야 한다.

단기 대책도 촘촘히 짜야 한다. 위기의 시장은 작은 충격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24시간 모니터링은 기본이다. 이상 징후가 생기면 시장 개입 등 즉각 조치에 나서야 한다. 필요하면 재정과 금리를 동원해 더 과감한 경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수출 감소 충격에 대비해 내수 확대가 방향이 돼야 할 것이다. 투자자들도 과민 반응을 삼가야 한다. 공포는 퍼 나를수록 강해지는 속성이 있다.

국가 위기 때 꼭 필요한 게 리더십이다. 정치권의 단합이야말로 국민에겐 최고의 위안과 희망이 될 것이다. 브렉시트를 협치의 시금석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에겐 탁월한 위기 극복의 DNA가 있다. 국난이 닥치면 강해지는 유전자, 지금이야말로 그 힘을 보여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