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세월호 이후에 공피아가 더 극성부리는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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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공정거래위원회의 고질적인 ‘전관예우’가 다시 한 번 확인됐다.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정위에서 제출받은 ‘2012~2016년 공직자윤리위 취업 심사 통과자 현황’에 따르면 공정위의 4급 이상 퇴직자 중 재취업을 신청한 20명 가운데 17명이 대기업·대형 로펌에 들어갔다. 이들 대기업과 로펌은 공직자윤리법에 규정된 ‘퇴직 후 3년간 취업 제한’ 기관이다. 그러나 이들은 공윤위의 승인을 거치면 취업이 가능하다는 예외 조항을 활용해 재취업했다.

공정위 전관들의 로펌행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6대 로펌에 재직 중인 공정위 출신만 40명이 넘는다. 공정위 부위원장을 지낸 7명 중 6명이 로펌에 소속돼 사회의 눈총을 샀던 일이 불과 몇 년 전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관피아’ 척결을 다짐했고 국회는 공직자윤리법을 고쳐 취업 제한을 강화했다. 그런데도 이번에 재취업한 17명 중 16명이 세월호 참사 이후에 공윤위의 심사를 통과했다. 20명 전원이 퇴직 1년 이내 재취업했으며 1개월 만에 재취업한 사례도 있다. 신속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공피아(공정위+마피아)가 수그러들긴커녕 더 극성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과 로펌이 공정위 출신을 선호하는 이유는 뻔하다. 대기업 불공정 행위의 방패막이로 쓰겠다는 것이다. 경제 검찰로 불리는 공정위는 각종 담합을 적발하고 거액의 과징금을 물린다. 라면값·4대강 담합 등엔 수천억원대의 과징금을 매겼다. 잘못 걸리면 기업이 휘청거릴 정도다. 과징금을 과도하게 물렸다가 소송에 져 되돌려 준 돈이 2011년엔 111억원이었지만 지난해엔 3126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이를 두고 ‘전관 역할’을 배려해 공정위가 기업 과징금을 부풀린다는 해괴한 소문까지 나돌 정도다.

이런 커넥션을 방치해선 나라의 미래가 없다. 현재 비공개인 공윤위의 심사를 공개하고, 전직의 청탁을 받아주는 현직들까지 강도 높게 처벌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필요하면 취업 제한 퇴직공무원 범위를 더 확대하고 예외 조항 적용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