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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결번판과 인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현행 즉결번판제도와 운영상의 문제점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왔다. 인간의 자유와 기본권을 침해하는 요인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즉번피의자가 경찰서에 연행되면 간단한 조사끝에 무인을 찍으면 경찰서 보호실에 장시간 가둬진다. 경찰서장에 의해 즉심청구가 결정되면 즉결재판소로 호송되어 재판을 받는다. 담당 판사는 여러명의 피고인을 한꺼번에 세워놓고 피고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경찰조서를 유죄의증거로 인정, 즉석에서 환고한다.
이러한「벼락치기 재판」이 지난57년부터 해마다 수십만건씩 행해져왔다.
83년만해도 61만건이었으니 하루에도 수천명이「번리없는 재판」을 받고 있는 셈이다.
억울하게 즉번에 넘어갔다고 해서 정식재판을 청구하는 길이 있으나 시간적 경제적 부담이 커 이를 청구하는 사람이 1%도 안된다고 한다.
「1분재판」을 받기위해 주거가 확실하고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없는 사람까지 경찰서에서 12시간 곤욕을 당해야 하는 현실은 법치주의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과 같다.
신병이 경찰서 대기실이든, 보호실이든 간에 장기간 수감상태에 있는것은 일종의 긴급구속과 다름이없다. 또 경찰조서에 날인을 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진술 기회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채 경찰조서만을 토대로 벌금 구류등을 선고하는 것도 온당한 재판이랄 수 없다.
이는 피고인이 자백진술의 내용을 부인하더라도 자백의 입장성과 서류의 진정성립을 인정, 유죄의 증거로 삼는 것으로서 이를테면 경찰조서가 증거의 왕이 되는 셈이다.
이러한 제도상의 문제점 때문에 경찰이 즉번을 남용할 소지는 많으며 실지로 남용사례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박승서)가 즉심제도의 문제점을 제기해 이의권신실등을 내용으로한 개정안을 청원형식으로 국회에 제출키로 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즉결심판제도는 원래 범죄는 많은데 이를 재판할 판사가 적어 편법으로 생긴것이었다. 서독등 선진여러나라에서는 이 제도가 아예 없다.
즉결심판은 쉽게말해 정식재판을 생략한 제도다. 정식재판 절차의 무시는 인권을 근원적으로 경시하는 것이다.
설사 즉결재판을 받고난후 정식재판을 받을 수 있는 길은 틔어져있지만 즉결재판을 받기전에 정식재판을 받을 수 있는 길도 마땅히 틔어져있어야 한다.
83년에 즉결재판을 받았던 61만8천여건중 도박·폭행·재물손괴등 5만8천여건의 60∼70%가 정식재판을 요구해 검찰에 넘겨졌더라면 기소유예처분이 가능했다는 분석이고 보면 이의권은 마땅히 신설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도 이제 법관수도 늘어나고 법치주의를 엄격히 할때가 왔다.
그러자면 인권을 다루는 절차도 정상화 되어야하고 능율의 이름아래 절차를 무시하는 즉번제도는 장차 예외적으로 활용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형사법의 사각지대나 다름없는 즉심제도의 조속한 보완이라도 서둘러 줄 것을 당부한다.
또 교통이나 경범죄등을 제외한 일반 형사사건만이라도 즉심에서 제외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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