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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참전 안보리 결의, 소련 불참해 거부권 행사 못한 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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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호 22면

1950년 6월 27일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소련 대표가 불참한 가운데 7개 이사국이 손을 들어 한국에 대한 군사지원을 결의하고 있다. [중앙포토]

6·25전쟁이 발발한 지 66년이 지났다. 북한의 월등한 군사력에도 남한이 존속할 수 있었던 요인 가운데 하나는 유엔의 개입이다. 66년 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 제82호(1950년 6월 25일자, 한국 시간 26일자)는 북한군에 대해 38선 이북으로 즉시 철수하라는 요구였고, 제83호(6월 27일자)는 북한군 격퇴에 필요한 원조를 유엔 회원국이 남한에게 제공하라는 권고였다. 제84호(7월 7일자)에서는 북한군 격퇴 작전을 수행할 통합부대가 유엔기를 사용하고 미국이 그 사령부를 구성한다고 결의했다. 이렇게 하여 전무후무한 유엔군이 탄생했다.


주한미군 사령관이 사령관을 겸하고 있는 유엔군은 대체로 주한미군과 동일시되고 있다. 주한 유엔군은 유엔의 예산 지원을 받지 않고 또 안보리 대신에 미국의 통제를 받지만, 오늘날까지 주요 문제를 안보리에 보고하고 있다. 유엔이라는 공식 명칭을 사용하면서, 북한뿐 아니라 중화인민공화국을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3년 이상 수행했으며, 이후 66년 이상 여전히 정전 체제 하에서 존속하고 있다.


 


‘소련 불참으로 무효’라는 주장 안 통해소련이 의결 거부권을 갖는 안보리에서 유엔군 구성 결의를 얻어냈다는 점은 매우 이례적이다. 6·25 도발을 사전에 동의한 소련이 한반도에 파견될 유엔군의 결성에 찬성할 리 만무했다. 즉 유엔군 결성은 소련이 안보리 회의에 결석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당시 소련은 중공의 중국 대표권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1950년 1월부터 안보리 회의에 불참하고 있던 차였다.

지난해 6월 25일 야당 당직자들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규탄하고 있다. [중앙포토]

제82호 결의에는 11개 이사국 가운데 유고슬라비아만 기권했고 상임이사국 4개국을 포함한 9개 이사국이 찬성했다. 제83호 결의는 유고슬라비아만 반대했고, 회의에 참석한 인도(다음 회의에서 수락을 발표했음)와 이집트는 표결에 불참했으며, 나머지 7개 이사국이 찬성했다. 제84호 결의에 대해서는 유고슬라비아·이집트·인도 등 3개국은 기권했고 나머지 7개국은 찬성했다.


1965년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이 10개국으로 확대된 이후에는 총 15개 이사국 중에서 5개 상임이사국을 포함한 9개국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안보리 결의가 가능하다. 절차적 문제에 대한 표결에서는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을 인정하지 않지만, 특정 사안이 절차적 문제인지 실질적 문제인지에 관한 의결에서는 거부권을 인정한다. 따라서 사실상 이견을 보일 수 있는 모든 사안에 대해 실제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이 인정되고 있는 셈이다.


소련은 자국이 불참했기 때문에 주한 유엔군에 관한 안보리 결의가 무효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체로 결석과 기권을 거부 행위로 보지 않는다. 거부하려면 참석해 반대표를 던져 반대 의사를 명확히 드러낼 수 있는데 굳이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명확한 거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상임이사국이 결석하거나 기권했음에도 채택된 안보리 결정 가운데 이의가 제기된 예는 매우 드물다.


안보리 결정에서 상임이사국과 비상임이사국 간의 힘 차이는 어떨까. 자국의 선택을 제외한 나머지 이사국들이 찬반을 무작위로 표결했고 자국의 선택에 따라 통과 여부가 좌우될 확률을 계산하면, 상임이사국의 결정력은 약 5%이고, 비상임이사국의 결정력은 약 0.5%로 나타났다. 상임이사국과 비상임이사국 간의 표결 결정력 차이는 약 10 대 1 정도인 것이다. 즉, 현격한 불평등이 있다. 그러나 그 차이가 5개 상임이사국이 각각 20%씩 100%의 결정력을 갖고 나머지 10개 상임이사국은 아무런 결정력이 없는 정도라곤 보기 어렵다. 이사국 7개국이 반대하는 안보리 결의안은 어떠한 경우에도 통과될 수 없기 때문에 10개 비상임이사국 가운데 7개국이 의견을 함께 하면 5개 상임이사국 전체와도 맞설 수 있는 것이다.


 다수결에 비해 소수가 유리한 거부권거부권은 결의를 저지할 수 있어도 결의 통과를 보장하지 못한다. 1개국이 거부하든 4개국이 거부하든 그 결과는 모두 부결이기 때문에 상임이사국 4개국의 힘은 상임이사국 1개국의 4배가 아니다. 거부권 제도는 다른 의결방식에 비해 소수에게 힘을 좀 더 배분하는 방식인 것이다.


거부권이라는 막강한 영향력을 부여 받은 소련은 66년 전 안보리 회의에서 6·25 도발에 관해 추궁 당하거나 도발을 중단시키도록 압력 받을까 우려했더라도 회의에 참석해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었다. 소련이 이런 전략적 실수를 저지르는 틈을 활용해서 유엔의 이름으로 정당성을 확보하면서 군사력을 제때 동원한 결과가 바로 주한 유엔군이다. 뒤늦게 실수를 깨달은 소련은 이후 안보리 회의에 적극 참석해서 중공군 철수를 다룬 12월 결의안에는 거부권을 행사했다. 결국 1951년 1월 안보리는 6·25전쟁 자체를 안보리 의제에서 제외하기로 하는 결의안 제90호를 11개 이사국 전원 합의로 의결했다.


6·25전쟁 이후에도 유엔군을 포함한 외국 군대의 철수에 관한 공산측 결의안이나 자유 총선거로 한반도를 통일하자는 서방측 결의안은 냉전시대 내내 유엔 총회에서 표 대결을 벌였다. 총회 결의는 유엔군 지위를 바꿀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 싸움의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다. 주한 유엔군의 법적 근거는 안보리 결의다. 역으로 말하면 안보리의 거부권 제도로 인해 주한유엔군은 존속되고 있는 것이다. 주한 유엔군을 해체하려는 안보리 결의는 미국을 비롯한 몇몇 상임이사국이 거부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의제로 아예 채택될 수가 없었다. 변화보다 지속을 지향하는 거부권은 불가역(不可逆)을 활용한 전략적 수단인 셈이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인, 2015년 6월 25일에도 국내 정치에서 거부권이란 말이 등장했다. 국회에서 의결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한을 행사한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는 거부권이라기보다 재의요구권이다.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했을 때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이전과 같은 의결을 또 하게 되면 그 법률안은 법률로서 확정되기 때문이다. 즉 국회 내 지지가 3분의 2에 미치지 못하는 법률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을 뿐이다. 만일 재적의원 300인 가운데 200인이 한 목소리로 통일하여 행동한다면 대통령의 뜻에 어긋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있다. 물론 대통령의 의사 표명에 따라 재의 표결 때 입장을 바꾸는 국회의원도 있기 때문에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한 법률안조차 결국엔 폐기되는 경우가 있다.


국회의원 1인의 표결권은 찬반 표결에서 찬성이 과반에 1표 모자라는 경우에만 결정력을 발휘한다. 예컨대 300명 전원이 기권 없이 표결할 때 찬성 150표, 반대 149표일 경우에만 1인 혼자서 표결 결과를 뒤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대통령은 법안을 통과시킬 수는 없지만, 찬성이 199표 이하라면 법안을 부결되게 할 수 있다. 대통령이 공천 등의 여러 경로로 국회의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까지 감안해보면 국회의원 1인의 영향력을 대통령에 비견할 수는 없다.


만일 여당이 늘 대통령과 뜻을 함께 한다고 한다면 집권 여당은 의석 33.4%만으로 야당의 입법을 저지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야당이 법률안을 통과시키더라도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하면 재의결을 위한 3분의 2 이상의 찬성표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20대 국회에서 129석(43%)을 확보한 집권 여당 새누리당은 거부권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야당의 국회 내 거부권은 의결방식에 따라 다르다. 단순과반수제에선 국회 의석 50%를 확보해야 법률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현재의 이른바 국회선진화법 상황에서는 대체로 의석 40%를 초과하면 거부권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국회 내 각 정파의 힘도 비교할 수 있다. 현행 4당 체제에서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122석, 40.7%), 국민의당(38석, 12.7%), 정의당(6석, 2%), 무소속(5석, 1.7%)의 의석 비 기준으로 각 정당이 자신이 참여할 경우 과반이 되고, 불참하면 과반이 되지 않을 확률을 계산해보자. 편의상, 소속 정당에 따라 일치단결하여 표결에 임하고 무소속은 각자 행동한다고 가정해보자. 현 의석 비 기준으로 단순과반수제하에서의 결정력 크기는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무소속(1인)의 순이다. 만일 129석의 새누리당이 특정 정당과 함께 과반을 만드는 상황이라면 38석의 국민의당도 새누리당을 대신해서 과반을 만들 수 있다. 이 점에서 국민의당은 서너 배의 의석을 가진 새누리당이나 더불어민주당과 동등한 힘을 갖고, 6석의 정의당보다는 월등한 힘을 갖는 것이다.


국회선진화법선 새누리·더민주이 거부권 가져60% 이상의 찬성을 필수로 하는 의사결정방식 하에서의 의결 결정력을 비교해보면,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무소속(1인)의 순서이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의석은 각각 40%를 넘기 때문에 양대 정당 가운데 하나라도 제외하면 60% 이상의 찬성이 불가능하다. 즉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각각 거부권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반면 국민의당은 자신들이 빠지더라도 60% 이상의 연대가 가능하다. 양대 정당이 연대하면 나머지 정당은 있든 없든 60% 확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국민의당의 영향력은 무소속 의원 1인의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이론적으로 국회선진화법 폐기를 가장 반길 정당은 국민의당인 것이다. 물론 정당 이념까지 고려하면 다른 계산도 가능하다.


오늘날 안보리에서 거부권 행사는 드문 편이다. 단순 표 대결이 아니라 사전 조율에 따라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냉전이 끝난 이후엔 더욱 그렇다. 물론 관점에 따라 공식 토론 대신 밀실 거래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덜 대립적이고 더 타협적임은 분명하다.


국내 정치에서도 거부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서로 대치한다는 의미다. 거부권을 행사하라고 이런 제도를 만들어놓은 게 아니라, 거부권을 포함한 여러 상황을 상정해서 쌍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타협안을 미리 만들라는 게 진정한 의미다. 우리 정치도 뒷거래와 대치에서 벗어나 투명한 타협을 지향해야 한다. 그러려면 상대 진영의 일정 권리를 인정하는 합리적인 타협안을 정치인뿐 아니라 유권자가 받아들여야 한다.


김재한한림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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