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새로운 FTA 체결 필요…2년 내 못하면 특혜관세 사라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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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가 현실이 되면서 우리 기업들은 또 다른 부담을 안게 됐다. 유럽 현지법인들은 투표 결과를 실시간으로 본사에 보고하면서 대책 수립에 돌입했다. 브렉시트의 파장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삼성전자 유럽본부 대륙 이전 검토

당장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가전업계는 브렉시트의 영향이 유럽 전반으로 번져나갈 것으로 보고 대책마련에 착수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24일 “브렉시트로 인한 경기 불안정이 유럽 전체로 번지고 이게 만성화하는 경우를 더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경기 위축으로 매출에서 유럽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2013년 23%에 달했던 유럽 매출이 지난해에는 19.3%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LG전자도 11.2%에서 10.3%로 유럽 비중이 작아졌다. 금융위기·재정위기 여파로 유럽의 경기가 나빠진 탓이다.

두 회사 모두 영국에는 생산거점이 없고 동유럽에 공장을 두고 있다. 최악의 경우 유럽 내에 공장을 운영하면서 영국에 제품을 팔 땐 관세를 내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

이 때문에 브렉시트 이후 2년간의 유예기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기간 동안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맺은 특혜 관세가 영국과의 교역에서 유지된다. EU는 현재 한국을 비롯한 53개 경제권과 무역협정을 맺고 있다.

김윤태 KOTRA 런던무역관장은 “당장 영국으로선 교역 규모가 큰 국가부터 FTA 협상 순위를 잡게 될 것 같다”며 “독일·미국 등보다 우리나라가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큰 만큼 선제적으로 한·영 FTA를 맺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영국 첼시 지역에 유럽본부를 둔 삼성전자의 경우 이를 생산거점이 있는 폴란드 등 EU 역내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자동차 산업은 조금 더 셈법이 복잡하다. 한국은 현재 한·EU FTA를 통해 영국에 자동차를 무관세로 수출한다. 브렉시트로 인해 2년간의 유예기간 중 한·영 FTA가 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업체들이 영국에 차를 수출할 때 10%의 관세를 물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와 경쟁관계에 있는 일본 도요타와 닛산처럼 영국에 생산거점을 둔 기업들은 영국에서 생산한 차를 EU로 수출할 때 관세를 물게 된다. 국내 자동차업체들이 브렉시트의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현대·기아차는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영국에서 7만8000여 대를 판매했다. 같은 기간 유럽 전체 판매(40만2000여 대)의 19.4%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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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민 국제무역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앞으로 유럽에 진출하는 우리 기업들은 브렉시트 이후 도미노 탈퇴 가능성까지 따져보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껏 EU 회원국에 생산거점을 두고 관세 혜택을 보려 해도 브렉시트 같은 돌발변수가 언제든 또 생기면 별다른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브렉시트의 여파로 꼼꼼한 환율리스크 관리는 모든 기업에 숙제가 됐다. LG경제연구원은 이날 “올해 3~4월에 국내 주식시장에 대거 유입된 영국계 자본이 유출될 우려가 있다”며 “유럽중앙은행(ECB)은 EU의 경기 위축을 막기 위해 양적완화 규모나 기간을 연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수기·김유경·문희철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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