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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만표 사건 특검은 왜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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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박재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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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는 지난해 검찰에 구속되면서 8개월 뒤 벌어질 ‘운명의 장난’을 상상이나 했을까.

아마 그는 검사장 출신인 홍만표 변호사를 통해 ‘면죄부’를 샀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140억원대의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추가 기소되는 불운을 맞으면서 그의 면죄부도 허공으로 날아갔다. 형기를 마쳤지만 석방은 고사하고 대표이사직마저 내놓아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정운호와 판사 출신인 최유정 변호사의 사소한 다툼으로, 어찌 보면 홍 변호사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맞고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단순 도박 사건은 게이트로 번졌고 특검의 개입이 불가피해지는 정치적 분위기다.

홍 변호사에 대한 특검은 꼭 필요할까. 특검은 어떤 효과를 낼까.

국가 최고 사정기관의 핵심 부서인 검찰 특수부가 수사한 사건이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낙제점 수준으로 평가절하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검찰과 검찰을 지지하는 일부 인사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한 변호사의 ‘검찰 변호’ 내용 중 일부.

“상식이 없는 언론 때문에 특검을 한다면 그만큼 세금 도둑이 비상식적으로 발호할 것이다.” 이 변호사는 홍 변호사와 검찰 간부들 사이에 불법 행위가 없는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확인됐는데도 언론이 마치 이들이 부정거래를 한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는 논리를 폈다. 증거가 없으면 처벌을 할 수 없다는 또 다른 ‘국민의 상식’을 언론이 무시했다는 것이다. “언론이 상식 없이 국민의 상식을 논하는 바람에 국민이 비상식적이 됐다”는 주장이다.

솔직히 “이분들의 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수사는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먼저 절차적 흠결이다. 검찰이 최선을 다해 수사를 했느냐는 의구심이 생긴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홍 변호사의 부정축재 과정에 현직 검사들이 어떤 방법으로 도움을 줬느냐는 것이다. 정운호 사건을 처리할 때 근무했던 서울중앙지검장이나 서울중앙지검 3차장의 조사 과정과 결과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검찰 수사팀은 3차장을 상대로 한 서면조사만 실시했다. 뭐가 무서웠을까. 아니면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었을까.

또 다른 문제점은 검찰이 수사 범위를 자의적으로 한정시킨 것이다.

한 해에만 100억원대 가까이 버는 등 불과 5년 만에 수백억원대의 자산가가 된 홍 변호사의 사건 수임 과정이 궁금하지도 않은가. 전관의 약발이 2~3년가량 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가 지속적으로 거액을 벌어들이게 된 이유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홍 변호사가 62건의 사건을 ‘몰래 변론’해 수임료 34억여원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한 발표도 의구심을 자아낸다. 검찰 주장대로라면 홍 변호사의 평균 수임단가는 5000만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변호사 업계에선 그의 평균 수임단가가 이보다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특검 수사가 만병통치약은 아닐 것이다. 1999년 이후 이뤄진 11차례의 특검 중 제대로 평가받은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특검이 이뤄지더라도 실질적으로 수사하는 사람은 주로 검찰에서 파견된 검사들이어서 한계가 있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시민들이 말하는 사법적 정의는 실현 불가능한 상상일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신화처럼 말이다.

하지만 특검 수사 과정에서 관련 검사들이 소환되고 조사를 받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시민들은 평등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할 것이다. 이후 검찰 조직에는 전관들의 유혹을 방어할 명분을 찾게 해줄 것이다. 이번 게이트 특검은 우리의 묘한 사법시스템과 이를 둘러싼 생태계를 정화시킬 수도 있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를 찾았으면 한다.

박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