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수능 '족집게' 강사 전면 조사할 필요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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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모평) 문제 유출의 파장이 간단찮다. 경찰이 어제 문제 유출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한 학원 강사 이모(48)씨와 현직 교사들의 검은 커넥션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어서다. 수능 ‘족집게’를 내세운 유명 강사의 뒷거래 유혹에 현직 교사들이 그대로 넘어갔다는 것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국어 시험 문제 사전 유출 당사자로 지목된 이씨는 이른바 ‘일타강사(과목 매출 1등 스타강사)’ 출신이다. 그간 ‘적중률 마케팅’을 통해 인기를 끌었는데 알고 보니 도덕 불감증에 빠진 교사들이 뒤에 있었던 것이다.

이씨는 “특정 작품이 나온다고 콕 집어 말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모평 검토위원인 송모 교사가 또 다른 박모 교사에게 출제 내용을 알려줬고, 박 교사(구속)가 이를 이씨에게 전달한 것으로 확인했다. 그 과정에서 이씨와 교사들의 은밀한 거래도 드러났다. 수년 전부터 교사들이 출제한 국어 문제를 넘겨받아 자신의 강의 교재에 실은 뒤 3억원을 건넸다는 것이다.

이 같은 강사들의 문제 사들이기는 학원가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다. 수능이나 모평 출제 참여 가능성이 큰 교사나 EBS 교재 저자에게 문항당 최고 10만원까지 준다고 한다. 출제교사 풀이 적은 데다 EBS·수능 연계율이 70%나 돼 이들의 출제 패턴이 수능에 반영될 확률이 높다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몇 문제만 적중해도 단번에 족집게로 알려져 돈방석에 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 1993년 수능 시행 이후 그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6·9월 모평과 교육청의 연합학력평가 , 수능을 치르는 과정에서 족집게들의 몸값만 치솟았다. 그래도 교육부는 의심도 않고 관리·감독에 손을 놓았다. 만시지탄이지만 이참에 족집게 강사나 일타강사의 실태를 전면 조사할 필요가 있다. 사전 정보 없이 실력만으로 예상 문제를 콕 짚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이번 사건이 보여주지 않았는가. 교사들의 윤리의식도 요구된다. 교사가 흔들리면 절대 공교육이 강해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