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송파 역전세난 악몽…지금부터 입주 잔금 계획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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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입주가 한데 몰리면 정부로서도 딱히 손을 쓸 방법이 없다. 사전에 주택 인허가를 통해 분양 물량을 관리하고 조율하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일단 실패하면 전셋값 급락 등 ‘역(逆)전세난’(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현상)을 피할 수 없다.

전세보증금 안 빠져 낭패 우려
새로 들어가는 집 임대차 계약 때
미리 보증금 낮추고 월세 올려야

실제 2008년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 재건축 아파트(엘스·리센츠·파크리오) 1만5000여 가구가 한꺼번에 입주하면서 송파구는 물론 인접한 강남·강동·광진구 등 주변 일대가 역전세난으로 몸살을 앓기도 했다. 2007년 전셋값이 3억8000만원 선이던 강동구의 한 아파트는 1년 만인 2008년 하반기 전셋값이 2억원 초반으로 급락했다.

당시 전셋집이 남아돌면서 전셋값이 급락해 집주인은 대출까지 받아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는 등 혼란을 겪었다. 강동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사장은 “세입자를 붙잡기 위해 집주인이 도배 등 집 수리를 조건으로 내거는 일도 잦았다”며 “최근의 전세난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중앙·지방정부가 한 일은 집주인이 전셋값을 제때 돌려주지 못해 생긴 임대차 계약분쟁 조정이나 분쟁 관련 상담 서비스 정도였다.

전문가들은 2~3년의 시간이 남은 만큼 지금부터라도 관리를 해 나가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2~3년 뒤의 입주 대란은 이미 예견된 만큼 지금이라도 분양 물량을 조절하고 3개월인 입주 지정 기간도 더 늘리는 식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파트 분양 계약자나 예비 청약자도 정부만 믿고 있어서는 곤란하다. 계약자나 예비청약자는 대개 분양 아파트 인근 도시에서 전·월세를 살고 있는 예가 많다. 새 아파트 입주 때 전세 보증금을 받아 잔금을 내겠다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역전세난이 벌어지면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해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최광석 법무법인 로티스 변호사는 “전세 만기가 지났는데도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소송 외엔 방법이 없다”며 “3~6개월인 소송 기간도 문제지만 집주인이 정말 돈이 없다면 소송에서 이겨도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세 보증금만 믿고 있다간 입주 지정 기간을 놓쳐 잔금 연체료까지 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부동산팀장은 “보통 계약 후 3년 뒤에 입주하는 만큼 입주 직전의 임대차 계약 땐 보증금을 낮추고 월세를 올리는 식으로 계약하거나 전세금보증보험을 들어 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전세금보증보험은 집주인이 제때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때 유용하다. 주택도시보증공사와 SGI서울보증이 판매 중인데 보증금액(전세 보증금)의 0.2% 정도를 연간 보증료로 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주택 공급 조절이 쉬운 ‘후(後)분양제’를 확대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후분양제는 아파트를 80% 이상 지은 상태에서 분양하는 제도로, 땅만 보고 계약하는 지금의 선(先)분양제와 달리 공급 조절이 쉽고 부실공사 논란 등에서 자유로운 게 장점이다. 이 때문에 정부도 2013년 민영주택을 대상으로 후분양을 시범도입했지만 실적은 형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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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후분양대출보증 실적은 2014년 828가구, 2015년 744가구에 그쳤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선분양제는 주택보급률이 70% 선이던 1970년대에 주택 대량 공급을 위해 허용한 제도”라며 “지금은 주택보급률이 110%에 이르는 만큼 후분양제로 옮겨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다만 후분양제는 집값을 3년여간 나눠 낼 수 있는 선분양제와는 달리 6개월~1년 만에 모두 마련해야 하는 게 단점이다. 또 건설사가 땅값은 물론 건축비까지 대출을 통해 마련해야 하므로 분양가가 오르거나 공급이 확 줄 수 있다. 노희순 주택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선·후분양의 장단점이 뚜렷한 만큼 충분한 논의를 통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뒤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정일·황의영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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