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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욕조에 앉아 아이디어 떠올리는 천재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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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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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헤더윅. [사진 D뮤지엄]

어려서부터 그의 머릿속은 늘 아이디어와 궁금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물을 마실 때도 ‘왜 물병을 길쭉하게만 만들까. 물방울 모양으로 만들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맨체스터 폴리테크닉 대학에서 3D디자인을 전공하고 영국 왕립예술학교(RCA)에서 공부하던 시절에도 그는 ‘발명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어디에서 누구를 위해 일해야 발명가가 될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할 수 없이, 스물넷에 두려움에 떨며 차린 게 ‘헤더윅 스튜디오’다.

헤더윅, 서울 D뮤지엄서 첫 전시회
“아이디어, 논쟁·실험으로 가꾸는 것”
상하이엑스포 영국관으로 스타덤

‘디자인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불리는 영국의 디자이너 겸 건축가 토머스 헤더윅(46) 얘기다. 2010년 상하이 엑스포 영국관, 싱가포르 난양기술대학 건물 등 그는 손대는 프로젝트마다 놀랄 만한 아이디어와 이를 뚝심 있게 현실화한 결과물을 내놓아 천재성을 드러냈다. 200명 규모로 성장한 그의 스튜디오는 미국 구글 본사 설계도 맡고 있다. 2004년 최연소 ‘왕실 산업 디자이너(RDI)’로 지정됐고, 2013년 ‘대영제국 기사단 훈장(CBE)’을 받았다.

그가 서울 한남동 D뮤지엄에서 10월 23일까지 ‘헤더윅 스튜디오: 세상을 변화시키는 발상’ 전시를 열고 있다. 첫 국내 전시다. 그에 맞춰 방한한 그를 16일 만났다.

창의력의 원천을 묻자 그의 첫 마디가 “천재는 없다”였다.

“나는 욕조에 들어앉아 엄청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타입이 절대 아닙니다. 아이디어는 가꾸어 나가는 거에요. 스튜디오 사람들과 끝없는 논쟁을 펼치고, 실험합니다. 더 창조적인 것에 집착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인간이 더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인본주의죠. 나의 명성을 위해 디자인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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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미국 타임지가 최고의 발명품으로 꼽은 상하이 엑스포 영국관. [사진 D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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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만에 새롭게 디자인한 런던의 2층버스. [사진 D뮤지엄]

그는 프로젝트가 크든 작든 새로움의 출발점은 하나의 아이디어라고 설명했다. 그를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상하이 엑스포 ‘영국관’은 1500㎡ 부지 한 편에 놓인 작은 박스다. 민들레 씨앗 같기도, 말미잘 같기도 한 모양새의 네모 상자에서 사방으로 총 6만 개(길이 7.5m)의 아크릴 막대가 뻗어 나온 형태다. 막대들 끝에는 25만 개의 씨앗이 박혀 있다. 영국관은 ‘씨앗 대성당’이라 불리며 창조상 금상을 수상했다.

“더운 여름날 3시간씩 기다려 200개가 넘는 국가관을 봐야 하는 관람객을 위해 전시 공간 바깥에서 앉아 쉬며 바라보기 좋은 파빌리온을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도시의 미래’라는 엑스포 주제에 맞춰 영국의 미래인 자연을 보여주는 게 컨셉트였죠. 영국을 생각하면 셜록 홈즈와 여왕만 떠올리는 데 사실 세계 최초의 식물원이 있고 1인당 녹지가 가장 넓은 도시가 런던이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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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 패딩턴 지역에 설치된 ‘롤링 브리지’. [사진 D뮤지엄]

2018년 완공 예정인 런던 템즈강의 ‘가든 브리지’도 상식적인 궁금증의 산물이다. 헤더윅은 “런던에는 수많은 다리가 있는데 왜 사람들은 다리에서 만나자고 약속하지 않는지 의아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템즈강을 가로지르는 보행자 전용 다리를 700여 종의 식물이 심어진 공원으로 꾸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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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올림픽 성화대. [사진 D뮤지엄]

2012년 런던 올림픽 성화대도 마찬가지. 그는 사람들이 왜 올림픽 성화대를 기억하지 못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너무 높게 설치해서 그렇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나온 게 꽃잎 같은 성화봉 204개를 바닥에 둥글게 펼친 성화대다. 불이 붙으면 세워져서 꽃다발처럼 보이는 형태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구글 본사 사옥 역시 2만 명의 구글 직원 각자가 소중하다고 느낄 수 있는, 휴먼 스케일이 살아 있는 건축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구글 본사는 덴마크의 젊은 건축가 그룹 BIG과 함께 설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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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난양기술대학의 ‘러닝 허브’. [사진 D뮤지엄]

그의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는 온갖 재료의 물성을 실험하는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실현된다. 필요할 경우 직접 기계를 만들기도 한다. 0.1㎜ 두께 금속 철판을 구겨서 건물 외벽을 만들고, 15만 개의 유리 구슬을 2만7000가닥의 철사로 엮은 30m 길이의 조형물을 만든 경우도 있다. 그의 디자인은 장인정신과 치밀한 기술력이 뒷받침하고 있다.

왜 항상 비정형에 가깝고 기하학적인 형태를 만드는지 물었다. “창밖을 보세요. 온통 네모 반듯한 건물뿐이잖아요. 그래서 곡선을 씁니다. 늘 상호보완할 수 있게 주변을 고려해요. 만약 다 곡선이라면 직선을 썼을 거에요. 많은 게 다양하게 조합될 때 세상의 가치가 더 빛나지 않을까요.”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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