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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바다 그 많던 병어는 다 어디로 갔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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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호 27면

떼를 지어 거친 물살을 헤치는 병어. 남획과 갯벌 파괴로 우리 해역에서 점차 드물어지고 있다. [그림 박성곤]

학창시절을 인천에서 함께 보낸 친구가 오래 만에 찾아왔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함께 바닷가를 거닐었다. 하지만 생명으로 넘치던 갯벌은 난폭한 개발로 매립돼 손가락만큼도 남지 않았다. 산 중턱에서 고즈넉하게 노을을 바라볼 수 있던 청량산은 번잡한 공원이 되고 말았다. 내 추억 속에 남아있던 인천 바다는 옛 모습을 잃었다. 그래도 6월, 산란기를 앞두고 도톰해진 병어는 남아있겠지라고 생각하며 추억의 병어회와 병어조림을 찾았다.


‘측편(側偏)하다’는 단어는 어류도감이 아니면 거의 듣지 못하는 말이다. 몸이 옆으로 편평하다는 뜻이다. 참치나 고등어처럼 통통하지 않고 갈치처럼 몸이 납작한 모양이다. 찹쌀떡을 마름모꼴로 꾹 눌러놓은 듯 납작한 병어가 측편한 모양이다. 몸이 미사일처럼 날쌔진 않지만 그렇다고 물살에 휩쓸리며 허둥대는 정도는 아니다. 밀물과 썰물이 무섭게 교차하는 사리 때에도 멋지게 균형을 잡는다.


떼를 지어 물살을 거스르는 병어는 잘 자라면 두 자(60㎝)에 이른다. 꼬리를 뺀 몸통의 길이는 몸의 높이와 비슷하다. 아가미에서 2시 방향을 가리키는 가슴지느러미는 단호하고, 이마와 턱에서 꼬리지느러미까지 부드럽게 이어지는 배지느러미와 등지느러미는 완전한 대칭을 이룬다. 알파벳 V자를 옆으로 뉜 듯 몸길이의 4분의 1이 넘는 꼬리지느러미는 거센 물결을 헤친 측편한 몸을 재빠르게 나아가게 한다.


육지의 화려한 꽃들이 햇살에 화답하며 자태를 뽐내는 6월, 바다의 생명들도 풍요로움을 만끽한다. 식물성 플랑크톤의 번성을 기다리던 동물성 플랑크톤이 덩달아 늘어나면 5젖, 6젖에 들어갈 젖새우들이 풍부해진다. 이 때를 기다리던 병어도 살이 통통하게 오른다. 바닷물이 최고로 따뜻해지기 직전, 한껏 통통한 병어는 하얀 살이 더욱 연해지고 기름기가 충만해진다. 우리 서남해안을 비롯해 인도양에서 남지나해와 동중국해에 두루 분포하지만 우리 해역에서 점차 드물어지는 병어는 모두 3종이다. 맛과 생김새가 하도 비슷해 전문가가 아니면 구별이 불가능한 병어와 덕대, 그리고 중국병어가 그것이다.


갯벌이 드넓은 우리 서해안에 두루 분포하는 병어를 인천 특산이라고는 감히 말할 수 없다. 병어는 갯벌이 넓은 해역에 많은 젖새우와 갯지렁이를 비롯해 동물성 플랑크톤을 작은 입으로 즐겨먹는다. 수심 10m~ 20m인 암초 사이의 모래바닥에 알을 낳는다. 예전엔 인천에서 조금 떨어진 바다에서 쉽게 잡혔고 소래포구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한강에서 쓸려온 모래와 갯벌이 곱게 내려앉는 인천 앞바다는 조수간만의 차가 10m가 넘는다. 바닷물이 깨끗할 뿐 아니라 영양분이 풍부해 병어가 토실토실했다. 하지만 이젠 옛이야기가 됐다. 병어의 고장 인천은 그 명예를 신안 앞바다에 넘길 수밖에 없다. 오뉴월 사리 때 신안군 해역은 병어잡이 어선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왜 병어(兵魚)일까. 입 작은 생선, 병사들처럼 떼로 움직여서 붙여진 이름일까. 하지만 떼로 움직이는 생선은 병어말고도 많다. 나당연합군으로 참여한 당나라 병사에게 잔뜩 올라온 병어를 실컷 먹여 그렇다는 설도 있다. 서해안의 갯벌이 대부분 온전하던 시절 흔전만전하던 병어는 이제 고급생선이 됐다. 이맘때 신안 해역으로 모이는 어선은 값나가는 생선, 병어에 목을 맨다.


폭이 100m가 넘는 안강망은 물살이 거센 사리 때 커다란 입을 바다 중간 깊이에 펴고 크고 작은 병어를 맞는다. 넓은 그물을 바닥에 내려놓고 양쪽에서 훑어내는 쌍끌이는 병어는 물론 바닥에 사는 아귀와 크고 작은 어패류까지 싹쓸이한다. 그때 커다란 병어가 잘 잡힌다. 흔히 ‘덕자(德者)’라 말하는 ‘대병어’다. 한 자, 다시 말해 30㎝가 넘으니 덕(德)을 쌓은 병어가 아닐 수 없다. 작은 내장을 빼내고 가지런한 뼈를 고르면 풍성한 하얀색 살점이 접시 하나를 가득 채운다.


이렇게 귀한 대병어를 어떻게 요리해야 이맘때 병어의 위상을 살리는 걸까. 일단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비늘들을 털어내고 위아래 지느러미와 꼬리를 잘라낸 뒤 아가미 앞의 머리와 내장을 깨끗하게 제거해야 한다. 그러면 양이 조금 줄어들지만 살은 여전히 묵직하다. 광어와 달리 병어회는 껍질째 썬다. 칼을 기울여 어슷하게 자르면 흰색에 가까운 연분홍의 살점이 신선함을 과시한다. 식성마다 다르겠지만, 6월의 쫀득한 병어회를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건 아무래도 무성의하다.

1 6월의 별미 병어회.

6월 병어는 조림이 제격이다. 조림을 할 때는 내장과 지느러미만 제거하면 된다. 멸치로 우려낸 육수를 집에서 가장 큰 냄비에 부은 뒤, 통으로 썬 여름 감자와 무를 침대처럼 깔아놓는다. 육수에 자박하게 잠길 정도로 얌전하게 올려놓은 병어 위에 간장에 고추장과 다진 마늘과 갖은 양념으로 걸쭉하게 버무린 양념장을 얹는다. 그리고 처음에 팔팔, 나중에 보글보글 끓여내면 고종과 순종이 좋아했다는 병어조림이 완성된다. 접시에 옮겨 담기 전에 숭숭 썬 대파와 실고추를 흩뿌리면 금상첨화다.


전남 해양바이오연구원은 살이 붉은 생선보다 단백질과 불포화지방산을 많은 병어가 DHA, EPA와 타우린이 풍부해 동맥경화나 뇌졸중과 같은 순환기 질환을 억제하고 치매와 당뇨병은 물론 암까지 예방하는 것으로 홍보한다. 하지만 지방질이 풍부해 별미 중의 별미인 병어라도 치료제일 리는 없다. 손쉽게 무침이나 구이, 매운탕이나 지리로 끓여도 극강의 맛을 내는 병어는 입맛이 떨어지는 여름철의 밥도둑이다.

2 전라도에선 30㎝ 이상의 병어를 ‘덕자’라고 부른다.

어부들이 ‘덕자병어’라 말하는 대병어는 덕대와 같은 종은 아니다. 병어든 중국병어와 덕대든, 길이가 한자가 넘으면 전부 덕자다. 플랑크톤과 해파리를 즐겨 먹으며 30㎝ 이상 자란 병어의 내장은 같은 어장에서 잡히는 아귀와 비교할 때 터무니없게 작다. 병어는 일본 관서지방에서도 최고의 생선으로 대접받는다. 서양에선 버터피시(Butterfish)라고 불린다. 비린내가 없는 병어는 6월에 더욱 고소하고 달콤하다. 해마다 작황이 줄어드는 만큼 병어의 몸값은 높아지고 있다. 이제 병어는 큰맘을 먹어야 알현할 수 있는 고급생선이 됐다.

전북 군산시 어청도 남서방 67마일 우리측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불법조업중이던 중국어선을 해경이 검거, 어획량을 확인하고 있다. [중앙포토]

중국인들도 나당연합군과 병어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을까. 작황이 해마다 줄어드는데 고급음식의 재료에 돈을 아끼지 않는 중국인들이 병어 공판장에 나와 두둑한 전대를 풀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돈다. 그렇찮아도 중국 어선들은 우리 해역에 무리져 그물을 펼치고 각종 고기를 남획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병어회와 조림이 유명세를 타자 주문량을 맞추려는 어선들이 산란기의 병어를 싹쓸이한다며 개탄한다. 치어 방류기나 산란기에 병어 어획량을 제한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참조기가 서해안에 다가오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남획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큰 원인은 갯벌이 사라진다는 데 있다. 생선도 자기가 태어난 모천(母川)을 찾는다. 자신이 태어난 갯벌, 알 낳을 곳이 사라졌는데 어찌 고기들이 다가올 수 있겠는가.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사라진 갯벌이 무려 4억 3000만 ㎡이나 된다. 인천공항 건설로 4600만㎡의 갯벌이 자취를 감췄다. 인천의 송도신도시와 청라도 매립으로 사라진 갯벌이 3300만 ㎡가 훨씬 넘는다. 하지만 갯벌 매립은 도처에서 멈추지 않고 있다.


갯벌을 매립하려면 최대로 밀려든 해수면보다 높게 무언가 조간대 위에 쌓아야 한다. 하지만 육지의 흙으로 쌓으려면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들어가는데다 민원을 감당할 수 없다. 갯벌 매립을 위해 쌓는 자재는 바로 병어가 산란하는 바다의 모래다. 매립되는 면적보다 훨씬 넓은 모래를 인근 갯벌에서 퍼올린다. 모래가 사라지면서 병어는 산란장을 잃는다. 모천을 잃은 병어는 구천을 헤맬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아직 공식적으로 포기하지 않은 세계 최대의 조력발전소의 꿈은 병어의 길목마저 차단할 태세다.


해양수산부는 올 초 병어를 되살리겠다고 선언했다. 치어를 양산해 서식하는 바다에 풀겠다는 계획이다. 한데 갯벌 매립을 중단하지 않은채 치어를 방류한다고 병어가 예전처럼 회복될까. 또 신재생에너지로 위장한 조력발전 계획은 어찌할 것인가.


어민들은 “살아 있을 때 제 배는 곯아도 죽어서 사람한테는 많은 걸 남기는 생선”이라며 ‘덕자’라 불렀다. 전남 주민들은 제사상에 올린다. 이제라도 절 받는 생선의 터전을 잘 보전해야 조상님들이 후손들을 용서하지 않을까. 서울 강남에 무역 사무실을 차려놓은 고향 친구가 인천다운 맛을 선보이겠다고 손을 잡아끈다. 하지만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해산물 요리가 영 아니었다. 병어조림이 있다면 봐주려 했건만, 보이지 않는다. “친구야, 6월이 되었으니 인천으로 와라. 학생 시절 푸짐하게 먹던 병어회와 조림을 준비할게.”


박병상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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