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봉장은 온통 울음바다|남북적 방문단 그리던 혈육과 만나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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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울과 평양의 가족상봉장은 재회의 기쁨과 다시 헤어져야만 하는 분단의 아픔이 함께 여울졌다.
40년만에 다시 얼굴을 마주한 남과 북의 이산가족은 얼싸안고 울음을 터뜨렸으나 더러는 너무 변한 모습에 얼굴을 못 알아보기도 했고 기억이 흐려진 노모는 아들을 앞에 두고도 아픈 과거를 되살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광경도 보였다.
그러나 가족들은 너나없이 이 기막힌 분단의 비극을 어서 빨리 끝장내야 한다는 마음은 하나였다.
이런 가운데도 북측은 이날 상봉을 위한 실무접촉에서 느닷없이 『칸막이도 안된 이런 곳에서 이산가족들이 만나는 것은 곤란하다』고 엉뚱한 이유를 내세워 상봉을 거부, 난항 끝에 서울에선 당초 30명씩 만나기로 했던 인원을 15명으로 줄였고 상봉시간이 30여분 늦어졌다.

<북측서 취재방해소동|평양상봉>
○…숙소인 고려호텔에서 이루어진 이날 이산가족 상봉은 북한측의 준비부족과 무성의, 고의적인 취재방해로 갖가지 소동과 온통 엉망인 상황에서 진행됐다.
북한측은 21일 상오 9시30분 북측기자들을 일제히 호텔로 데리고 와 북쪽 가족들이 남쪽 가족과 확인도 하지 못한 채 대기하고있던 각방에 한사람씩 들여보냈으나 상오10시까지도 상봉절차에 대한 방식을 밝히지 않았다. 상봉장소였던 3층 로비에는 북측안내원 2백여명, 기자1백여명이 떼거리로 몰려들어 이산가족들의 이야기를 개인적인 일이라며 듣지 못하게 하는 등 우리측 기자단의 취재를 고의적으로 방해.
안내원1명씩과 함께 나타난 북한의 이산가족 대부분은『북한측 제도가 좋고 수령동지의 덕분으로 이런 일이 이루어졌다』고 일제히 정치적 선전인 말들을 했다.
○…이현섭씨(58)는 37년만에 만난 이모 김가매씨(75)를 만나자 『이모님, 얼마나 고생하셨습니까』라며 울부짖었다.
이씨 어머니가 서울에서 얼마 전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은 이모는 『네 어머니가 정말 남쪽으로 내려가서 살다 돌아가셨느냐』며 조카를 껴안았다.

<흉터보이며 아들확인|서울의 상봉>
서울에 사는 8순 노모는 귀가 잘 안 들리고 정신이 흐려 북에서 온 장남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우는 것조차 잊었다.
어머니 유묘술씨(83)는 북에서 온 장남 서형석(54·대학교수)을 만나자 서가 어머니 귀에 대고 『어머니 맏아들 형석이가 왔어요』라고 큰소리로 외치고 선 채로 90도 각도의 절을 했지만 차남 서장석씨(52)와 함께 나온 어머니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고 아들을 알아보지도 못했다.
이때 서형석은 왼쪽눈 가장자리의 흉터를 보이며 『어머니, 어려서 돌장난을 하다가 다친 흉터가 있잖아요. 이걸 낫게 하느라고 어머니가 얼마나 고생했어요』라고 다시 외쳤으나 어머니는 침묵.

<두남매 부둥켜안아>
○…40년만에 오빠 조수한(58)을 만난 여동생 재분씨(50·경남사천군)는 얼굴을 잊은 듯 서로 한참동안 쳐다보다 울음을 터뜨리며 오빠를 부둥켜안자 그제서야 여동생의 손을 부여잡고는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오빠는 여동생에게 시집을 갔느냐고 물었고 11년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는 『어릴 때 고생시킨 어머니가 나때문에 걱정을 하시다 빨리 돌아가셨구나. 불효자식이 돼버렸다』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여기저기서 흐느껴>
○…북측 고향방문단과 우리측 이산가족의 1차상봉이 이뤄진 21일 상봉장은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남북적 관계자, 내외신 취재기자들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상봉장소 전면에 마련된 테이블에 자리한 우리측 이영덕 한적부총재와 손성필 북적위원장은 눈에 가득 눈물이 괴었고 내외신 기자들도 열띤 취재경쟁 속에서 가끔 돌아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내는 모습이었다.
이날 상봉장에는 적십자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원 1명씩이 나와 혈압 강하제, 진정제 등의 주사와 약 등을 준비,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서울에 사는 이희숙씨(61·여)는 이날 삼촌 중암(77)·정암(73)씨 형제와 함께 상봉장에 나와 북에서 온 동생 영재(58)를 만났다.
이영재가 상봉장입구 안내소에서 누나 등이 앉은 테이블을 확인하고 다가가자 서울의 세 사람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처음엔 멍한 표정이었다.
순간 영재가 『누나야』라고 외쳤고 누나 이씨도 『영재야』라고 소리치며 서로 와락 끌어안고 눈물을 쏟았다.
누나 이씨는 감격에 겨워 목이 메인 듯 아무 말도 못했으나 이영재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가족 얘기보다는 다분히 선전효과를 노린 엉뚱한 말들만 늘어놓았다.
이영재는 『어디서 사느냐』는 누나질문에 『평양에서 조금 나가 아파트에 산다』고 했다.
○…상봉 장소에는 「목포의 눈물」「두만강」등 흘러간 옛노래의 대금 경음악이 나직이 흐르고 있었다.
○…북한측의 전성복씨(52)는 남동생 전영운(49), 여동생 전영금(43)씨에게 맨 먼저 『아버지·어머니는 살아 계시느냐』고 물은 뒤 『2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대답을 듣고는 잠시 멍한 얼굴로 천장을 응시하기도.
여동생 영금씨가 『아버지·어머니가 오빠를 얼마나 보고 싶어했는지 아느냐. 오빠는 정말 불효자식이야』라며 울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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