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 클럽 학살극 벌였던 테러범이 동성애자?

중앙일보

입력

미국 올랜도 총기 난사사건의 범인 오마르 마틴(29)이 동성애자였을 수 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마틴의 범행 동기 파악이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 범죄가 ‘동성애 혐오’에서 비롯됐다는 수사의 한 축이 그의 일상과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외신에 따르면 마틴은 사건 현장인 게이 클럽 펄스의 단골이었고, 게이 만남 앱들을 즐겨 사용했었다는 진술이 잇따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전직 해군인 케빈 웨스트(37)는 1년여 전 게이 전용 채팅 앱 ‘잭디(Jack’d)‘에서 마틴을 만났다고 주장했다. 웨스트는 “앱을 통해 마틴과 연락을 주고 받았지만 이후 연락이 끊어졌다가 3개월 전 다시 연락이 닿았을 때 마틴은 ‘곧 올랜도에 갈 것이니 만나서 술 한잔 하자’고 말했다”며 “펄스에서 마틴을 수 차례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LA타임스에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기 한 시간 전인 12일 새벽 1시쯤 마틴이 펄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안녕’ 했더니 그도 고개를 끄덕이며 ‘안녕’하고 인사했다”고 밝혔다.

코드 세데노(23)도 마틴이 펄스 바에 앉아서 술을 마시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MSNBC에 말했다. 그는 1년 전 마틴이 게이 전용 앱 그라인더(Grindr)를 통해 자신에게 접근해왔다고 기억했다. 세데노는 “그가 앱에 올린 글이 매우 기이해서 즉시 그를 차단시켰다”며 “내 게이 친구들이 동성애자 앱 아담포아담(Adam4Adam)과 잭디에서 마틴을 봤다”고 말했다.

미국 매체 올랜도 센티널은 펄스에서 마틴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최소 4명은 된다고 보도했다. 타이 스미스는 이 신문에 “마틴은 때때로 펄스에서 구석에 앉아 혼자 술을 마셨으며 종종 술에 취해 시끄럽고 공격적으로 행동했다”고 말했다. 마틴이 다녔던 인디언 리버 커뮤니티 칼리지의 친구였던 한 남성은 지역 신문 팜비치포스트에 " 마틴과 몇몇 게이 바를 함께 갔다.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을 뿐 그를 게이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틴의 전 아내 시토라 유수피는 CNN머니의 인터뷰에서 '마틴이 게이냐'는 물음에 "모른다"고 답했다. 마틴의 아버지 세디크도 "사실이 아니다. 그가 게이라면 왜 그런 짓을 했겠느냐"고 반문했다고 미 언론이 전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관련 진술들을 검토 중이라면서 마틴의 클럽 방문이 범행 장소를 물색하기 위한 것인지 고객으로 간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고 USA투데이는 전했다.

WP는 13일 마틴이 고등학교인 '스펙트럼 대안학교'에 다니던 시절 9ㆍ11테러에 기뻐하는 이상 행동을 보였다고 전했다. WP에 따르면 마틴의 고교 친구는 “9ㆍ11 당시 두 번째 비행기가 뉴욕 세계무역센터 빌딩에 부딪히는 장면이 TV로 나오자 모든 학생이 충격에 빠졌지만 한 명(마틴) 만이 발을 구르며 기뻐했다”고 밝혔다. 다른 친구는 “그때 마틴은 웃고 있었는데 얼마나 행복한 모습이었는지 믿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 마틴은 나이트클럽 테러에 앞서 테러 목표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올랜도의 디즈니월드를 방문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했다. 이는 마틴이 비교적 쉬운 공격 목표(소프트타깃)인 디즈니월드를 테러 목표로 구상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런 가운데 미국 수사당국은 마틴이 수니파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의 직접 지시를 받았다기 보다는 자생적인 테러리스트라는데 무게를 싣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현재로서는 용의자 오마르 마틴이 외국의 테러 조직으로부터 지시를 받았거나 더 큰 계획의 일부라는 분명한 증거는 없다”면서 “'자생적 극단주의'에 따른 테러 행위로 보인다”고 밝혔다. 제임스 코미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도 기자회견에서 “용의자가 외국 테러조직으로부터 잠재적인 영감을 얻어 급진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직접 테러 지시를 내리지 않고도 사회 불만 세력을 세뇌시켜 테러를 저지르게 하는 IS의 글로벌 전략에 대한 대처가 시급한 현안으로 등장했다. IS는 인터넷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충성 맹세‘를 하면 '칼리프 전사'이자 순교자로 추앙 받을 수 있다며 ‘외로운 늑대(자생적 테러리스트)‘들의 테러를 부추긴다.

한편 프랑스 파리 교외에서도 13일 IS에 충성을 맹세한 한 남성이 경찰관 부부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테러감시단체인 SITE는 IS와 연계된 매체인 '아마크'가 이번 사건의 배후는 IS라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매우 심각한 테러 위협에 직면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뉴욕·워싱턴=이상렬·채병건 특파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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