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유주열]먼로주의와 대처리즘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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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을 가운데 두고 미국과 영국이 고립주의와 국제주의를 두고 국론이 분열되고 있다. 영국은 6월 23일 국민투표(referendum)로 결론이 나고 미국은 11월 8일 대통령 선거에 결판이 난다.

리만 쇼크 이후 8년이 지났으나 세계의 경제상황이 여전히 좋지 않다. 그동안 세계화(globalism)에 희생된 미국의 중산층 백인들이 이민자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다고 불만이 높다. 필자가 80년대 초 미국에서 유학할 당시에는 이민자의 일자리는 대개 정해져 있었다.
이민자는 주로 범죄 다발지역에서 생선가게 세탁소 등 백인들이 하지 않는 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이른 바 3D 기피업종이었다. 그러나 한 세대가 지나자 이민자의 자녀들은 사정이 좋아졌다. 이민자는 교육열이 높다. 이른 바 ‘타이거 맘(tiger mom)'을 둔 이민자 자녀들은 변호사 의사 등 고소득 직종의 자격을 취득 미국의 주류 사회로 진출하고 있다.
이민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민주당 정권의 장기 집권도 일익을 했다. 오바마 대통령 이후에는 이민자의 칼라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미국의 백인들은 머리 좋은 이민자들에 의해 일자리에서 조금씩 밀려나고 있었다.

세계 경제가 좋을 때는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경제가 나빠지자 문제가 들어나기 시작한다. 수락석출(水落石出)현상이다. 물이 빠지면 돌이 들어나고 남은 물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물고기들이 싸운다. 여기에 구세주처럼 나타난 인물이 도날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후보이다.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운 트럼프 후보의 주장은 이민자가 가장 많이 들어오는 멕시코 국경지대에 만리장성을 쌓고 무슬림의 입국마저 금지하겠다는 발상이다. 미국 경제에 나쁘다면 일본과 한국으로부터 미군 철수 등 기존의 동맹국관계도 재검토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후보의 주장은 과거 먼로주의를 연상케 하는 신고립주의(neo-isolationism)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전후로 유럽의 파시즘 그리고 공산주의의 위협에 직면하자 적극적으로 국제 질서에 개입하는 국제주의(internationalism)로 전환하게 되었다. 미국의 산업화 완성으로 국력이 높아진 탓도 있다.

트럼프는 그간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중시정책(pivot to Asia)을 비판하고 있다. 아시아 중시 정책에서 미국 우선 정책(pivot to America)으로 바뀌면 ‘아시아인에 의한 아시아’라는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신아시아주의 정책이 탄력을 받을지 모른다.
반면에 힐러리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미국의 국익은 고립주의가 아니고 국제주의에 있다고 주장한다. 고립주의는 미국을 테러의 위험에 더욱 노출시키고 세계무대에서 미국의 명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가지고 온다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EU(유럽연합)에서 탈퇴(leave)할 것이냐 잔류(remain)할 것이냐 하는 찬반투표를 6월 23일 한다. 영국의 젊은이 일자리를 EU 출신 이민 취업자로부터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EU 출신의 취업자는 매년 늘어 금년은 22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영국은 일자리뿐만이 아니라 이들에게 주어야 하는 주택과 교육 보건 서비스 혜택을 더 이상 감수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더구나 영국의 어려운 경제 여건에서 예산분담금도 큰 부담이 되고 최근에는 대규모의 난민유입도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EU 탈퇴)는 대외무역의 손실을 가져와 오히려 50만의 일자리를 잃게 된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브렉시트가 통과되면 영국의 짐도 안아야 하는 독일 등 부유한 EU 국가도 탈퇴를 심각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경기 침체에 의한 일자리 부족 그리고 난민유입으로 EU에 대한 호감도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 프랑스 등 내년에 선거를 앞 둔 나라들은 EU 탈퇴를 공약으로 내걸지 모른다. EU의 존립자체가 위험해 진다.
브렉시트는 막아야 한다. 영국은 EU의 아버지 장 모네를 키운 나라이다. 코냑 상인의 아들인 모네가 런던 사무소에 주재하러 갈 때 그의 아버지가 당부한 유명한 말이 전해지고 있다. “모네야 책은 한권도 가지고 가지 마라, 런던에서는 책보다 사람들을 만나서 배워야한다”
영국은 모네를 키우고 처칠과 케인스를 낳은 나라이다. 그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EU는 유사 이래 가장 성공한 경제통합기구이다. EU의 상호 무역 의존도는 60%로 세계 어느 경제 통합기구보다 높다.

1980년대 철의여인으로 불리었던 마거릿 대처 수상은 처칠과 달리 영국의 EU의 가입을 반대하였다. 세계경제의 침체는 자본주의 경제를 대표하는 미국과 영국을 새로운 고립주의인 먼로주의와 대처리즘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
우리의 한자에는 사람 인(人)자가 있다. 쓸러지지 않도록 서로 의지(interdependence)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다. 국제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미국 먼저’ ‘영국 먼저’하는 민족주의적 사고는 전염성이 강하다.

모든 나라가 자기 나라를 중심으로 할 때 세계는 파멸될 것이다. 고립주의는 명예로운 것이 아니고 진정한 애국 민족주의는 이웃과 더불어 살면서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멕시코 등 이민자의 젊은이가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살고 있듯이 영국에도 수많은 EU 출신의 젊은이가 영국의 꿈을 안고 산다. 브렉시트가 되면 그들은 어디로 가야하는가
금년 6월과 11월 세계 역사를 견인해 온 두 나라의 중요한 정책 전환이 될 투표가 기다리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지성적인 미국인과 영국인은 현명한 판단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영국의 국민투표에서 EU 잔류가 성공되면 11월 미국 대선에서도 힐러리의 국제주의가 힘을 받을 것이다.

영국은 과거 대제국의 영광에 향수를 느끼고 유럽과의 협력에 적응을 하지 못해 브렉시트를 주장한다고 한다. 마치 영국이 유럽 대륙과 맞먹는 바다 가운데 떠 있는 대륙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영국은 섬나라(island)로 어원상으로 고립(isolation)과 사촌 간이다. 혼자 있을 때(independent) 더 잘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진짜 잘 할 때는 유럽과 협력(interdependence)할 때다. 더구나 장 모네를 키운 영국은 EU를 떠나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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