亡懲 -망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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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3호 29면

나무가 부러지는 이유는 바람에 있고, 벽이 무너지는 까닭은 비(雨)에 있다. 그러나 생생한 나무는 쓰러지지 않고, 튼튼한 벽은 비에도 견딘다. 벌레 먹은 나무, 틈새가 벌어진 벽만이 쓰러질 뿐이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興亡盛衰)도 마찬가지다. 성하던 국가가 망하는 데는 그 원인이 내부에 있는 법이다. 전국시대 사상가 한비자(韓非子)는 ‘나라가 망하는 이유’를 이렇게 나열하고 있다.


군주가 나라 안의 정치는 어지럽게 하면서 외부의 원조에만 의지한다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군주의 성격이 지나치게 세 화합할 줄 모르고, 간언을 듣지 않고 승부에 집착한다면 그 역시 망할 징조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판단하지 않으며, 특정한 사람의 말만 듣는다면, 그 나라의 앞날은 없다.


군주가 대범하나 뉘우침이 없고, 나라가 혼란한데도 자신의 재능이 많다고 여기며, 나라 안의 상황에는 어두우면서도 이웃 적국을 얕잡아 본다면, 그 나라는 필시 망할 것이다. 다른 나라와의 동맹이나 원조를 믿고 이웃 나라를 가볍게 보며, 강대한 나라의 도움만을 믿고 가까운 이웃 나라를 핍박한다면, 그런 나라 역시 존재하기 어렵다.


상인들은 재물을 나라 밖에 쌓아두고, 백성들은 개인적인 싸움에만 열중한다면 그 역시 망할 징조다. 나라 안에 머물러 있는 인재들이 가족이나 재산을 나라 밖에 둔다면 그 어찌 성할 수 있겠는가. 나라 안의 인재는 쓰지 않고 오히려 나라 밖에서 사람을 구한다거나, 공적에 따라 임용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평판에 근거해 뽑는다면, 그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


왕실 친족들이 강력한 세력을 구축해서 안으로는 패거리를 만든다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대신들이 개인적으로 만든 패거리가 군주의 결정을 가로막고 나라의 권력을 독단적으로 휘두른다면, 그 역시 망할 징조다. 나라의 창고는 비어있는데 대신들의 창고는 가득 차 있고, 농민과 병사들은 곤궁한데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만이 이득을 얻는 나라는 망할 것이다.


『한비자』 ‘망징(亡徵)’편에 나오는 말이다. 그의 예언은 2500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지금에도 전혀 어긋남이 없어 보인다. 우리 정치는 과연 얼마나 건강한지, 한비자에게 묻고 싶을 뿐이다.


한우덕중국연구소장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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