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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CEO 인터뷰] 파블로브스키 ‘샤넬’ 패션부문 회장 “아시아 여성들의 샤테크 막으려고 가격 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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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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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중국 베이징 다산쯔에서 열린 샤넬의 ‘파리 인 로마 공방 컬렉션’ 패션쇼. 파리의 테라스 카페를 배경으로 한 흑백 영화 세트장을 무대로 만들었다.

한국인에게 샤넬은 명품 브랜드 그 이상이다. 많은 여성의 결혼 예물 위시리스트에 오르기도 하고, 재테크 수단이 되기도 한다. 샤넬로 하는 재테크는 일명 ‘샤테크’로 불린다. 한국보다 가격이 싼 프랑스 현지에서 샤넬 핸드백을 몇 개 사 와서 되팔면 비행기 값을 건지고 잘하면 수익도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명품 브랜드 최초로 새 가격 정책
베이징 패션쇼 등 로컬 시장 공략
디지털 활용해 젊은 고객들 유혹

프랑스 관광은 덤이다. 되팔지 않고 소장하더라도 샤넬 백을 대폭 할인받아 산 것 같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어 인기였다. 중국등 다른 아시아 국가도 사정은 비슷했다. 파리의 샤넬 부티크에 들어가기 위해 길게 늘어선 대기 줄에 아시아인 관광객이 유독 많은 것도 이런 이유였다. 좋아하는 명품을 조금이라도 싸게 사고 싶은 심리가 만나 빚어진 광경이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는 이런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 샤넬이 세계 190개 부티크에서 판매하는 제품 간의 가격 차이를 줄이는 ‘가격 조정 정책(price harmonization policy)’을 실시하면서다. 지난해 3월 샤넬은 새로운 가격 정책 도입을 발표하고, 한국·중국 등 아시아 시장에서 제품 가격을 평균 20% 내렸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시장 가격은 약 20% 올렸다. 앞으로도 국가 간 가격차이가 10% 이상 벌어지지 않게 하겠다는 게 골자다. 명품업계에서 처음 시도하는 모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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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노 파블로브스키 샤넬 회장. [사진 칼 라거펠트]

1년여가 흐른 지난달 31일 샤넬 패션부문 최고경영자인 브루노 파블로브스키 회장을 만났다. 샤넬이 중국 베이징에서 처음으로 패션쇼를 연 자리였다. 국내 언론 가운데 유일하게 중앙일보가 초대받았다. 그는 2004년부터 13년째 패션부문 회장을 맡고 있다. 샤넬을 세계 여성들이 꿈꾸는 브랜드로 만든 설계자다.

샤넬이 베이징에서 쇼를 연 건 처음이다.
“베이징에 있는 중국 고객들과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다. 가격 조정 정책을 시행한 지 1년이 됐다. 이를 계기로 샤넬은 로컬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로컬 고객들과 유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브랜드 전략을 바꾸었다. 유럽과 미국 시장에서처럼 한국·중국 고객들과의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는 것을 최우선 순위에 두게 됐다. 중국 고객만을 위한 패션쇼를 베이징에서 연 배경이다.”
가격 조정 정책을 시작한 배경은.
“샤넬은 2013년과 2014년 중국 시장에서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암거래 시장 때문이었다. 당시 중국에서 팔린 샤넬 브랜드 제품 두 개 중 한 개는 암시장을 통해 거래되는 것으로 추정됐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모니터링이 전혀 작동하지 않아 샤넬 로고는 붙었지만 진품인지 가짜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중국 시장과 비교할 수는 없으나 한국 시장도 비슷했다. 당장 바뀌어야 한다는 경고였다. ”
그래도 가격 인하는 파격이었다.
“아시아 고객들에게 프랑스와 자국 매장의 가격 차이가 왜 벌어지는지 설명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장시간 형성된 관행이라고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고 세상은 점점 진화하고 있다. 고객은 각국의 가격 정보 등 과거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게 됐다. 모든 걸 다시 세팅해야 하는 시점이 왔다고 판단했다. 브랜드를 새로 론칭하는 것과 같은 변화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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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패션쇼에서 선보인 의상들. 파리의 우아한 멋에 이탈리아의 관능적인 매력을 더했다. 브라운·오렌지 등 로마의 만추 분위기를 내는 색조와 크림·블랙 등 샤넬의 대표 컬러가 조화를 이뤘다. [사진 샤넬]

로컬 고객을 발굴해야 하는 이유는.
“ 샤넬은 1년에 새로운 컬렉션을 6차례 발표한다. 두 달에 한 번씩 새 상품을 출시한다는 의미다. 각국에 있는 부티크를 이용하지 않으면 새 컬렉션을 접하기 어렵다. 1년에 한 번 해외 여행 갈 때에나 샤넬 부티크를 방문하는 것으로는 샤넬과 고객이 지속적인 관계를 맺을 수가 없다. 고객이 컬렉션을 통해 우리의 창작 에너지와 다양한 제품 구성을 경험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성공했나.
“가격 조정 정책이 정답이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중국 고객들이 중국 내 부티크에서 점점 더 많이 구매하고 있다. 중국 내 매출은 두 자릿수로 성장했다. 매우 기념비적인 지표다. 현재 샤넬의 중국 시장 성장률은 다른 나라보다 높다. 새로운 비즈니스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한국에서의 성과는.
"가격 조정 이후 한국 내 고객이 20% 증가했다. 제품 가격 인하에도 불구하고 매출은 한 자릿수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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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패션쇼 무대에 오른 의상을 제작하는 과정. ‘르마리에 공방’에서 잎과 꽃 장식을 재단해 드레스 소재에 꿰맨다(사진 위). ‘샤넬 공방’ 수석 재봉사들이 천 조각을 짜 맞춰 드레스를 완성한다.

유럽에선 가격 인상에 대한 저항이 없었나.
“사전에 준비를 많이 했다. 제품 라인업을 늘리고, 가격폭을 넓혔다. 가격이 높을지라도 고객이 우리 제품에서 가치를 찾으면 된다. 럭셔리란 원래 그런 것이다. 창의성, 디자인, 퀄리티, 노하우를 담고 고객이 가치를 제대로 경험하도록 기회를 제공했다.”
로컬 시장을 어떻게 공략하는가.
“브랜드의 DNA인 디자인과 창의성은 파리에서 나온다. 하지만 브랜드 전략이 실행되는 곳은 로컬이다. 로컬 고객과 끊임없이 연결고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베이징 패션쇼를 준비하면서는 위챗(중국 최대 메신저 앱)을 통해 고객들과 소통했다. 로컬 고객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서비스를 현지화한 것이다. 로컬 고객의 욕구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디지털 전략에는 온라인 판매도 포함되나.
“화장품과 안경류는 이미 온라인으로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패션 부문은 e커머스가 아니라 e서비스에 무게를 두고 있다. 패션 제품은 실제로 보고, 만져보고, 입어봐야 한다. 디지털 역량을 활용해 고객이 부티크를 방문하도록 이끄는 데 초점이 있다.”
젊은 고객을 놓치는 건 아닌가.
“e커머스를 하려고 마음먹으면 어렵지 않다. 온라인에 숍을 열고 상품을 올려놓으면 된다. 하지만 그건 샤넬답지 않다. 우리는 더 고급스럽고, 더 의미 있는 서비스를 해야 한다. 샤넬은 모두를 위한 제품이 아니다. 명품으로서 희소성은 유지하면서도 밀레니얼 세대와 관계를 맺는 게 큰 과제다. ”
갈 길이 급하지 않나.
“미래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하는 게 먼저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올바른 결정이 더 중요하다. 그 사이에 샤넬은 계속해서 가치를 만들어 내면 된다. 그렇기 위해서는 브랜드 힘이 강해야 한다.”
샤넬에서 배운 최고의 비즈니스 교훈은.
“기업 경영에 영향을 주는 변수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모든 가능한 상황에 적응하고,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민첩성이 가장 중요하다. 글로벌 감각을 가지면서 로컬 역량도 강화해야 한다. 로컬을 이해하는 기업에만 기회가 올 것이 다. 비록 베스트셀러 제품이 모든 지역에서 같을지라도.”

베이징=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베이징 패션쇼, 송혜교·저우쉰 등 셀럽 700명 참석

지난달 31일 중국 베이징의 문화예술 중심가인 다산쯔 798 예술구에 성대한 패션쇼 무대가 만들어졌다. 샤넬이 베이징에서 처음 연 패션쇼 ‘파리 인 로마 공방 컬렉션’ 행사장이었다. 지난해 말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무대를 새롭게 재현한 ‘레플리카’ 쇼였다.

샤넬은 1년에 여섯 차례 패션쇼를 열고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인다. 네 차례는 프랑스 파리에서 쇼를 하고 두 차례는 영감을 주는 주요 도시를 순회한다. 지난해 5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개최한 국내 최초의 샤넬 패션쇼인 ‘크루즈 컬렉션’도 그중 하나였다.

베이징 행사장은 700여 명의 중국 VIP 고객과 셀레브리티로 가득 찼다. 할리우드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중국에서 인기인 배우 송혜교, 중국 현지 유명 연예인인 저우쉰·바이바이허·야오천 등이 샤넬 패션으로 한껏 멋을 내고 참석했다.

흑백 영화 세트장으로 꾸민 무대는 쇼가 끝나자 컬러 영화 세트장으로 바뀌며 파티 분위기를 열었다. 샴페인과 핑거푸드로 차린 스탠딩 파티가 시작됐다. 중국 셀레브리티들이 DJ가 되어 뿜어내는 음악에 맞춰 고객들은 와인잔을 들고 춤을 췄다. 참석자 중 일부는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크루즈 컬렉션 패션쇼에서 선보인 옷과 가방으로 단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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