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노숙자도 차별하는 복지의 아이러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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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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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의 배신
송제숙 지음
추선영 옮김, 이후
348쪽,1만8000원

한국에서 복지 만큼 논쟁적인 이슈가 있을까. 미 일리노이 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캐나다 토론토대에서 인류학을 가르치는 한국인 학자, 송제숙 교수도 복지 논쟁에 뛰어들었다. 그만큼 흔한 토픽이라는 얘긴데 저자는 의미 있는 통찰을 새로 끄집어냈다. 우리나라 복지체계가 외환위기(1997∼2001년)와 김대중 정부(1998∼2003년) 시기에 성립된 ‘신자유주의적 복지’라고 규정하면서 그 특징과 한계를 조목조목 짚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와 복지는 사실 궁합이 맞지 않는 단어들이다. 신자유주의는 경쟁과 능력에 기반한 경제적 이익을 중시하고, 복지는 다수를 대상으로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에 기반한다. 저자의 주장대로 김대중 정부 때 도입된 생산적 복지는 일할 의지와 능력이 있어야 자격이 부여됐다. 그래서 직업을 잃은 노숙자는 복지 혜택을 누리고, 원래 서울역에 있던 노숙자는 소외됐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복지의 배신이란 한국어판 제목이 나오게 된 것도 진정으로 복지가 필요한 계층이 소외된 모순을 꼬집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제 논리도 고려해야 할 것 같다. 공짜 점심 없듯 공짜 복지도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무상보육 정책 파동은 예산 뒷받침 없는 복지는 사상누각임을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다. 복지에는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북유럽이 복지천국이 된 것은 고복지·고부담 방식을 채택해 소득의 거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놓고 있어서다. 인구가 적고 국민소득이 높으니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스위스에선 기본소득으로 월 2500스위스프랑(300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됐다. 복지는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

김동호 논설위원 d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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