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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달의 예술-문학

속단(速斷)의 폭력에 맞서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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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금희 『너무 한낮의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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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
문학평론가·조선대 교수

포털 사이트 국어사전에 ‘이상하다’라는 말은 ‘정상적인 상태와는 다르다’라는, 얼마간 폭력적인 문장으로 정의돼 있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이상’인가. 그것을 분별하는 기준이 그저 다수결의 횡포일 뿐인 때도 많지 않은가. 사전을 좀 더 읽어보면 뒤이어 ‘지금까지의 경험이나 지식과는 달리 별나거나 색다르다’라는 설명도 나온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문장들에는 제 경험과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는 판단 유보의 태도가 한 줌이나마 담겨 있으니. 그러나 이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

충분해지려면 소설가들 정도는 돼야 한다. 그들은 남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에게 흥미를 느끼고 그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여 결국 그를 집단적 통념의 폭력으로부터 구출해내는 일을 한다. 세계 소설사는 이상한 인간들의 편에 선 소설가들의 투쟁의 역사이고, 훌륭한 소설가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변호하는 데 성공한 피고인들의 명단을 갖고 있다. 최근 두 번째 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를 출간한 김금희가 특유의 경쾌한 진실함으로 작성해 나가는 중인 명단에는 벌써 우리가 오래 잊을 수 없을 이름이 여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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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단의 ‘젊은 피’로 주목받는 김금희. 과거의 경험이 현재에 남긴 파장을 낚아챈다. [사진 문학동네]

‘조중균의 세계’의 주인공 조중균은 고참 편집자인데 직장 내 사교에 무심하고 업무에만 충실해 ‘유령 같다’는 평가를 받을 뿐 아니라 저자의 독촉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치밀한 교정작업으로 출간을 지연시킨 탓에 오히려 해고를 당하기에 이르는 그야말로 ‘이상한’ 사람이다. 그러나 소설을 다 읽고 나면 그는 그저 대학을 다닐 때 어떤 일로 경험한 모욕과 수치에 깊은 충격을 받은 이후 자신의 내적 진실에 충실하기로 결심한 사람일 뿐임을 알게 되고 이런 사람을 견뎌내지 못하는 이 세계야말로 이상한 곳임을 실감하게 된다.

한편 소설 ‘세실리아’에서 지금 송년회를 하고 있는 이들은 요트부 동아리 동기들로 그들은 20년 전 그들이 따돌려 내쫓다시피 한 친구 오세실리아를 화제에 올리는데 그의 별명이 ‘엉겅퀸’인 것이 ‘잘 엉겨서’인지 ‘엉덩이가 풍만해서’인지 따위가 그들 대화의 수준이다. 그런데 그중 하나가 지금은 설치미술가가 된 세실리아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녀가 당시 어떤 상처를 받았기에 동아리를 떠나야 했는지, 왜 지금은 버려진 기기들을 모으고 구덩이를 파는 일종의 자기 치유적 설치작업을 하고 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된다.

이 소설들의 화자가 조중균과 오세실리아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독특한 이름만큼의 고유한 진실을 이해받지 못한 채 끝내 ‘유령’과 ‘엉겅퀸’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요즘 나는 속단(速斷)의 폭력성에 대해 말하고 또 말한다. 이것밖에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세상의 저 수많은 판관들의 언어 폭력에 절망할 때마다 나는 이런 소설 속에서 겨우 일용할 희망을 찾아 문장에 의지하는 내 삶을 연명해 나간다.

신 형 철
문학평론가·조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