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세 부담 늘어 빚내 내집 마련…“가계대출 적극 관리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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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금리가 사상 최저로 내려가면서 ‘금리 민감도’가 높은 부동산 시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수익형 부동산 시장엔 투자자가 몰리고, 전세의 월세 전환엔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월세 증가로 주거비 부담이 커진 사람이 내 집 마련에 나서면서 가계부채 증가 속도도 한층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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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한국은행

전문가들은 상가나 단독주택용지와 같은 수익형 부동산에 시중 유동자금이 대거 몰릴 것으로 예상한다.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부동산팀장은 “수익형 부동산은 임대료가 오르지 않더라도 대출금 이자 부담이 감소하는 것만으로도 수익률 상승 효과가 크다”며 “앞으로 빌딩이나 상가와 같은 수익형 부동산에 투자자가 대거 몰릴 전망”이라고 말했다.

금리인하 부동산 영향은
집주인, 전세→월세 전환 가속도
세입자, 대출해 분양 받을 가능성

전세의 월세 전환은 더 빨라질 전망이다. 집주인 입장에선 목돈인 전셋값을 받아봐야 별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은행 대출을 받아 전셋값을 내준 뒤 월세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4월 말 기준 전국 아파트의 전월세 전환율(전세를 월세로 돌릴 때 적용되는 비율)은 평균 4.9%로 은행 예금이자(1%대)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서울은 평균 6%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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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한국은행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작을 것 같다. 대출 규제(여신심사 가이드라인) 여파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말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내놓고 주택담보대출 때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도록 했다.

서울·수도권은 올 2월, 지방은 5월 시행됐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기준금리가 내린다고 해도 대출이자가 감소하는 수준이므로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아야 하는 상황에선 큰 이점이 없다”며 “주택 수요가 다소 늘어나긴 하겠지만 주택 거래가 확 늘긴 어렵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대출 규제에서 빗겨나 있는 분양시장은 얘기가 다르다. 여심심사 가이드라인에서 집단대출(중도금 대출)은 제외되면서 주택시장에선 분양시장만 나 홀로 활황세다. 삼성물산이 8일 청약 1순위 접수를 받은 서울 개포지구의 래미안 루체하임(일원현대 재건축)은 경쟁률이 최고 81대 1에 달했다.

분양대행회사인 앰게이츠의 장원석 대표는 “분양열기가 뜨거운 만큼 주택업체도 최대한 사업을 앞당겨 시장에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분양 물량이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월세 증가로 주거비 부담을 느낀 일부가 매매로 전환하면 가계부채 증가세에도 가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크다.


▶관련기사
① 구조조정 동시에 경기부양 나선다
② 금리 0.25%P 내리면 주택대출금리 0.1%P 하락



올 1분기 전체 가계 빚은 1223조7000억원으로 전분기보다 20조6000억원(1.7%) 증가했다. 지난해 4분기(38조2000억원 증가)보다는 증가세가 둔화했지만 올 4월부턴 집단대출이 크게 늘고 있다. 지난해 분양된 아파트의 집단대출이 본격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집단대출은 가계부채의 질을 악화시키는 주범으로 꼽힌다. 아파트 분양 계약자의 소득 여부에 관계없이 시공사 보증만으로 대출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기준금리 인하가 가계부채 증가로 이어지지 않도록 가계대출 억제책 마련을 포함해 적극적인 부채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상빈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구조조정으로 대량 실업이 발생하면 소득 감소와 소비 위축으로 인해 가계 부채가 더 늘어날 수 있다”며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의 예외 조항을 보완해 집단대출 등 가계대출 규제의 사각지대를 축소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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