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설비 20% 인력 30% 감축 …정부 “신규 지원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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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호 경제부총리가 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업 구조조정 추진계획 및 국책은행 자본확충 등 보안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유 부총리는 “정부와 한국은행이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를 조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임종룡 금융위원장, 유 부총리,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 [사진 최정동 기자]

“신규 자금 지원은 없다. 자구계획을 통해 스스로 자금난을 해결하라.”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8일 ‘산업·기업 구조조정 추진계획’ 브리핑에서 밝힌 조선·해운 구조조정의 첫째 원칙이다. 자산 매각, 인력 감축 등을 통해 경영 정상화에 성공하면 선박펀드 같은 정책 지원을 하겠지만 실패하면 법정관리로 보내겠다는 얘기다. 그간 국책은행(산업은행·수출입은행)이 떠안은 부실을 11조원의 자본확충펀드로 메우기로 한 만큼 더 이상의 혈세 투입은 할 수 없다는 뜻도 담겨 있다.

대형 조선 3사(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가 전체 설비 20%, 인력 30% 이상을 감축해 총 10조3000억원의 위기 탈출용 자금을 마련하기로 한 건 정부의 이런 ‘기업 자체 생존’ 원칙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한진해운의 대주주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공개적으로 연체 용선료(선박을 빌린 비용) 1000억원을 해결하라고 요구한 것도 같은 취지다. 부실 대출의 책임이 있는 산업은행·수출입은행은 부행장직을 1명(10명→9명), 2명(10명→8명)씩 줄이는 것을 비롯해 인력·조직을 축소하기로 했다. <본지 5월 13일자 4면, 6월 7일자 1면>

조선업의 경우 대우조선해양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자구안(1조8500억원)과는 별도로 3조4478억원의 추가 자구계획을 제출했다. 2019년까지 인력 20%(3000명)를 감원하고 인건비를 줄여 1조2604억원을 마련하고, 바다에 떠 있는 플로팅도크 2개를 매각해 9456억원을 조달한다.

현대중공업은 하이투자증권을 비롯해 3개 금융 자회사를 매각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일부 도크 순차적 가동 중단 ▶인력 감축(2000명 희망퇴직) ▶사업 조정 등을 통해 총 3조5028억원을 현금화하기로 했다. 삼성중공업은 일단 1조4551억원 규모의 자구계획을 추진한 뒤 이달 말 나오는 경영 진단 결과에 따라 필요할 경우 유상증자,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 등을 검토하기로 했다. 성동조선·대선조선·SPP조선 등의 중소 조선사에 대해서도 신규 지원을 하지 않은 채 자체 생존하도록 했다.

해운업은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에 대한 정부의 대응법이 완전히 다르다. 정부는 현대상선의 용선료 조정 협상이 이번 주 마무리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협상이 타결되면 후속 조치로 현대상선의 글로벌 해운동맹 편입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부채비율이 400% 이하로 내려가면 총 12억 달러(약 1조4000억원) 규모의 선박펀드도 지원하기로 했다. 반면 한진해운에 대해서는 소유주가 있는 회사인 만큼 유동성을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용선료 협상 등을 지원할 수 있다는 방침을 정했다.

임종룡 위원장은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한진그룹에 한진해운 지원계획 마련을 요구했고, 현재 한진그룹의 지원방안 제출을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산은·수은 쇄신안도 공개

두 곳 모두 성과연봉제를 확대 도입하고 전 직원이 올해 임금 상승분을 반납한다. 산은은 2021년까지 인력 정원을 10%, 수은은 5%씩 줄인다. 이와 함께 산은 직원의 ‘낙하산’을 막기 위해 비금융회사에 대한 재취업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기로 했다. 오정근(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중장기적으로는 부실을 양산한 국책은행보다는 사모펀드 등으로 구성된 민간 태스크포스(TF)에 구조조정을 맡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가 구조조정 계획을 세우면서 중국발 금융위기나 미국 금리 인하 등 대외 리스크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글=강병철·이태경 기자 unipen@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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