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동안 네 번 불산 유출…금산 주민들 “더 못참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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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산 유출 피해를 본 충남 금산군 군북면 조정리 주민들이 군북초 체육관에 대피해 있다. [사진 신진호 기자]

“벌써 몇 번째입니까? 그렇게 불안하다고 했는데 또 사고가 나서야 대책을 내놓겠다니… 더는 믿지 못하겠어요.”

“솜방망이 처벌로 유출사고 빈발”
금산군은 공장 폐쇄·이전 요구

7일 오전 충남 금산군 군북초등학교 체육관에서 만난 주민들은 정부와 자치단체에 불만을 쏟아냈다. 지난 4일 금산에서 발생한 불산 유출 사고로 주민들은 나흘째 임시 대피소인 체육관에서 생활하고 있다. 마루 바닥에서 매트를 깔고 앉아있던 한 주민은 “공장을 옮길 때까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다”고 말했다.

사고는 금산군 군북면 조정리 반도체용 화학제품 제조업체인 램테크놀러지㈜에서 불산과 물 혼합물 400㎏ 정도가 유출되면서 발생했다. 금강유역환경청 등은 유출된 불산 양은 100㎏ 정도로 추정했다. 불산은 무색으로 자극적 냄새가 나는 휘발성 액체다. 전자회로와 각종 화학물질 제조 등 산업용 원자재로 사용한다. 독성물질로 화상과 호흡기 질환 등을 유발한다.

사고 직후 공장 반경 500m 내 주민 100여 명이 대피했다. 40여 명이 안면마비와 두통, 호흡기 통증으로 인근 병원과 보건소에서 치료를 받았다. 10명은 대전의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다. 당시 공장에는 20여 명이 근무 중이었지만 방독면 등 보호장구를 착용해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공장은 지난 4일부터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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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장에서 불산이 유출된 건 2013년 7월 이후 이번이 네 번째다. 2014년 8월에는 불산 11㎏ 가량이 유출돼 공장 인근 주민 김모(61)씨 등 7명이 구토와 발열 증상으로 병원치료를 받았다. 금강유역환경청은 이번 사고가 공장 측의 과실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 마을 황규식(49) 이장은 “사고 당시 공장 건너편 주민에게서 하얀 연기가 나온다는 연락을 받고 공장으로 뛰어갔다”며 “이미 불산이 유출돼 숨 쉬기가 힘들었고 마을을 돌며 주민을 대피시켰다”고 말했다.

주민 40여 명은 불산유출재해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공장이 폐쇄될 때까지 체육관을 떠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주민들은 공장 측의 초동대처가 부실했다고 주장했다. 신고가 1시간 가량 늦어진데다 119 신고 역시 공장이 아닌 주민들이 했다는 이유에서다. 한 주민은 “사고가 오후 5시30분 발생했는데 1시간이 지나도록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고가 발생하면 공장 측은 관공서로 내용을 통보하고 주민들에게 즉시 알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금산군은 해당 회사 측에 공장을 폐쇄하고 다른 곳으로 이전할 것을 요구했다. 관련 법률·규정도 검토 중이다.

대전환경운동연합 이경호 정책기획국장은 “이미 여러 차례 불산이 유출돼 주민들이 피해를 봤는데도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졌다”며 “행정당국의 안일한 관리와 공장의 안전불감증이 재발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공장 관계자를 상대로 불산 유출 경위와 유출 규모 등을 수사 중이다. 늑장신고가 이뤄졌는지도 조사하기 위해 CC(폐쇄회로)TV 영상도 분석하고 있다. 

글, 사진=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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