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롯데 상장 연기…누나가 야속한 신동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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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빈 회장

호텔롯데가 이달 29일 예정이었던 상장을 7월로 연기하고 주식 공모가도 낮췄다. 화장품업체 네이처리퍼블릭의 롯데면세점 입점 로비 의혹에 발목이 잡힌 탓이다.

신영자 ‘정운호 로비’ 연루 의혹
해외 IR 등 예고된 일정 미뤄져
상장 통한 지배력 확대 차질 우려
롯데 측 “일정 늦어져도 계획대로”

호텔롯데는 7일 금융위원회에 증권신고서를 정정해 제출하고 공모 절차를 다시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어 “수요예측은 7월 6~7일, 청약은 12~13일로 진행해 7월 중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할 계획”이라고 했다. 공모주식 수는 4785만5000주(신주모집 3420만주)로 변동이 없지만 공모가는 기존 주당 9만7000~12만원에서 8만5000원~11만원으로 내려 잡았다. 이에 따라 공모 규모도 4조677억~5조2641억원으로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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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금융감독원·호텔롯데

올해 기업공개(IPO) 최대어로 꼽혔던 호텔롯데 상장 일정은 지난 2일 검찰이 신영자(74)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자택을 압수수색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정운호(51)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롯데면세점에 화장품 매장을 넣으려고 신 이사장 등에게 금품을 건넸다는 혐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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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금융감독원·호텔롯데

면세점은 호텔롯데 기업가치(12조9231억원)에서 93.2%(12조478억원)를 차지할 정도로 절대적이다. 면세점 검찰수사는 상장 전에 반드시 관련 기관에 통보해야 할 중요 사안에 해당돼 정정 신고서를 제출하게 됐다. 회사는 이날 면세점 로비 의혹에 대해 “수사 결과에 따라 당사의 평판과 영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정정 신고서는 제출한 날로부터 15일(영업일 기준) 뒤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호텔롯데는 오는 29일부터 상장 작업에 들어가고, 추가 악재가 터지지 않는다면 7월21일쯤 상장이 이뤄질 전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동빈(61) 롯데 회장의 고민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호텔롯데 상장은 신 회장이 한·일 롯데 양측에서 ‘경영권’과 ‘지배력’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열쇠로 꼽힌다. 그런데 상장 시기가 늦춰질수록 ▶공모열기 저조 ▶추가 면세점 탈락 ▶경영권 리스크 재촉발 등 롯데로서는 생각하기도 싫은 ‘가능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호텔롯데는 롯데쇼핑, 롯데제과 등 한국 주요 계열사 지분을 상당부분 보유한 한국 롯데의 지주사격이다. 지금은 일본 롯데홀딩스와 일본 투자회사들이 호텔롯데의 지분 99%를 가지고 있어 ‘국적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상장 뒤엔 일본 측 지분율이 65%까지 떨어져 신 회장 입장에선 홈그라운드인 한국 롯데의 영향력을 키우고 경영권을 공고히 할 수 있다. 동시에 자신이 대표이사로 있는 일본 투자회사들을 통한 호텔롯데 직접 지배권이 커진다. 여기에 막대한 자금이 조달되면 호텔·면세 등 핵심 사업 분야나 지배구조 혁신에 투자할 여력도 생기니 일석삼조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상장 지연으로 자금조달 규모부터 줄어들 게 생겼다. 시간이 흐를수록 호텔롯데의 2분기 실적 악화도 주가에 반영될 수 밖에 없다. 지난 3월과 5월, 각각 신라HDC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이 문을 열며 본격적인 면세점 영업 경쟁이 시작된데다 7월1일부터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도 문을 닫아 3분기 실적도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네이처리퍼블릭의 면세점 입점 로비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월드타워점의 추가 특허마저 장담할 수 없어 공모 흥행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7월 중 열릴 예정인 일본홀딩스 주주총회가 상장 시기와 맞물려 경영권 분쟁의 불씨를 되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홍콩의 한 IB관계자는 “오너리스크가 더욱 부각돼 사업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한국의 재벌 구조를 안 좋게 바라보는 해외 투자자들 입장에선 (상장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커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롯데 관계자는 “호텔롯데 상장은 그룹 차원의 핵심 과제이자 성장 전략으로, 일정이 늦춰지긴 했으나 계획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공모자금으로 국내외 면세사업 확대와 호텔사업 등에 집중 투자해 글로벌 기업으로 나아갈 성장동력을 마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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