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계 “선주들이 선박만 제때 받아가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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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풍랑에 휩싸인 ‘빅3 조선사’들의 자구안이 속속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자구안과 별도로 험난한 ‘3각 난제’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어 대응책이 요구된다. 발주사들이 선박을 가져가지 않거나, 해양플랜트 숙련공이 부족하고, 저유가로 경영 환경이 안개에 빠져들 것이란 우려다.

자구안 낸 업계, 또 다른 복병은
저유가에 원유시추선 등 인수 미뤄
현대·삼성중공업 적자 원인 되기도
해양플랜트 숙련공 확보도 과제

6일 중앙일보가 입수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조선업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해양플랜트 운영을 지원하는 선박 인도량은 내년까지 매년 10% 이상씩 줄어들 것으로 분석됐다. 발주가 줄면서 ‘수주 절벽’도 우려되지만 정작 완성한 배나 플랜트를 선주사들이 가져가지 않는 ‘인도 유예’로 조선사들이 제때 대금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당수 해양플랜트가 원유시추용이다. 하지만 저유가로 원유시추의 매력이 줄어 이런저런 트집을 잡아 플랜트 인수를 미루다보니 조선사는 자금압박에 시달리는 것이다.

이는 국내 조선 3사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다. 이미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은 지난해 3분기 발주사의 예기치 못한 인수 거부에 따라 실적을 정정하는 공시를 내야 했다. 두 회사는 해당 분기의 적자폭이 각각 2192억원과 946억원씩 늘었다.

특히 이번 자구안에서도 각 회사의 현금흐름 자체가 ‘인도가 제때 이뤄진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자구안 자체가 다소 낙관적인 전망에 근거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채권은행 관계자는 “발주사들이 제때 배 값을 치르고 가져 간다거나 돈이 급한 조선사의 자산을 원하는 값에 사주는 경우는 드문 게 현실”이라며 “업체들이 당장 인력 감축을 통해 마련하겠다는 금액도 과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해양플랜트 기술이 점점 고도화하고 있다는 점도 부담스럽다. 판매하는 제품 가격은 별 차이가 없는데 관련 기술력은 더 쌓아야 하기에 투자 부담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과거 해양플랜트는 원유채굴용 시추 깊이가 200~300m에 그쳤지만 지금은 3㎞에 달한다.

특히 깊은 ‘초심해’에서의 원유시추는 고도의 기술력과 해양 환경 전문지식이 필요해 작업 과정의 비용을 낮추는 게 조선업계 전체의 큰 숙제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또 기존 선박 중심의 인력구조도 문제로 꼽힌다. 조선업계는 결국 ‘미래 먹거리’인 고부가 선박이나 해양플랜트 분야로 방점을 옮겨갈 수밖에 없지만 인력은 그렇지 않다. 계속되는 저유가 상황도 부담이다. OECD와 조선업계는 심해 시추작업에 필요한 기술 투자를 하고, 관련 인건비를 충당하려면 원유값이 최소 배럴당 60~80달러는 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국제유가는 배럴당 46달러 선에 머물고 있어 업계의 고민도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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