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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티켓 부탁해요, 195㎝ 키다리 아가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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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2013년 8월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 키 큰 소녀가 들어섰다. 중학교 3학년인 소녀의 키는 1m92cm나 됐다. 그러나 중3 소녀에겐 선수촌 생활이 무척 낯설었다. 열살 이상 많은 언니들과 함께 지내는 게 어색해 말수도 줄었다. 고된 훈련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면 엄마와 친구가 보고 싶어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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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농구팀 센터 박지수가 진천선수촌 체육관에서 정비 작업을 위해 키를 낮춘 림을 향해 덩크슛 자세를 취했다. 박지수는 “덩크슛을 한번도 못해봤다. 실제로 하면 짜릿한 기분이 들 것”이라며 웃었다. [진천=오종택 기자]

그로부터 3년이 흘렀다. 2016년 6월, 고교 3학년이 된 소녀는 3cm가 더 자랐다. 키는 3cm 자라는데 그쳤지만 마음은 더 크게 자랐다. 언니들을 향해 먼저 파이팅을 크게 외치고, 잠시 쉴 땐 음료수를 건넨다. 여자 농구대표팀 언니들은 막내 박지수(18·분당경영고·1m95cm)가 ‘보물’ 같다는 뜻에서 ‘보물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여자농구팀 18세 막내 박지수
아버지 박상관 농구DNA 물려받아
블록슛·리바운드에 패스도 잘해
대표팀 언니들 ‘보물이’라 불러
열흘 뒤 올림픽 예선 준비 구슬땀
“취미 영화보기, 배우 김우빈 좋아”

박지수는 13일부터 19일까지 프랑스 낭트에서 열리는 2016 리우 올림픽 최종예선을 앞두고 진천선수촌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각 대륙별 예선에서 본선 티켓을 얻지 못한 12개국이 3팀씩 4개 조로 나눠 조별리그를 치른 뒤 각 조 1·2위가 8강 토너먼트에 나선다. 여기서 5위 안에 들어야 올림픽 본선 무대에 나갈 수 있다. 한국은 벨라루스, 나이지리아와 C조에서 대결한다. 지난달 26일 진천선수촌에서 만난 박지수는 “지금 머릿 속엔 온통 올림픽과 농구 생각 뿐”이라고 말했다.

박지수는 중학생 때부터 한국 여자농구 대형 센터의 계보를 이을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14세이던 2012년 국제농구연맹(FIBA) 17세 이하(U-17) 세계선수권에서 블록슛 1위(경기당 3.9개)를 차지했다. 이후 연령별 세계선수권에 나가면 리바운드·블록슛에서 늘 상위권을 차지했다. 농구인들은 “키가 큰 센터에게 기대하기 힘든 패싱력에 기동력까지 겸비했다”고 칭찬한다.

박지수는 2013년 8월 아시아선수권 예비 명단에 들어 처음 성인대표팀에서 훈련을 했다. 그리고 만 15세7개월이던 2014년 7월, 세계선수권 대표에 발탁됐다. 여자농구의 전설 박찬숙(57)이 세운 최연소 대표팀 기록(15세9개월)을 갈아치웠다. FIBA는 박지수를 ‘10대 스타(teenage star)’라며 수시로 근황을 소개한다. 위성우 여자농구대표팀 감독은 “처음 대표로 뽑았을 땐 철없는 어린 아이였는데 갈수록 어른이 돼 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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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박상관(왼쪽) 전 감독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박지수. 박 전 감독은 1990년대 실업팀 삼성전자의 센터로 이름을 날렸다. [중앙포토]

박지수는 운동 유전자를 타고 태어났다. 프로농구 삼성·오리온에서 뛴 아버지 박상관(47·2m) 전 명지대 감독과 여자배구 청소년 국가대표 출신인 어머니 이수경(48·1m80cm) 씨 사이에서 태어난 덕분이다. 농구를 거쳐 배구선수로 전향한 오빠 박준혁(19·명지대·2m4cm)까지 온 가족이 ‘키다리’다. 가족 4명의 평균 신장이 1m94.7cm나 된다. 박지수는 “아기 때부터 공을 가지고 놀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농구를 시작한 이후 키가 매년 10cm씩 자랐다. 큰 키가 농구하는데 도움이 된 건 맞다”고 말했다.

유니폼을 벗으면 박지수는 ‘키 큰 여고생’으로 돌아온다. TV에 걸그룹 아이오아이(I.O.I)와 배우 김우빈이 나오면 눈을 떼지 못한다. 취미는 영화 보기다. 그는 “밝은 성격은 엄마를 쏙 빼닮았다. 코트에서 나오는 근성은 아빠한테 물려받았다”고 했다.

박지수는 한때 ‘한국 농구의 미래’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큰 부담감을 가졌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중 발목 부상을 당해 포기한 직후에도 꽤 오랫동안 방황을 했다. 그는 “재활기간은 자꾸만 길어지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미국엔 언제 가냐’고 물어봤다. 속이 상해서 농구를 그만 두고 싶었다. 운동을 가르쳐주신 선생님이 마음을 다잡아주신 덕분에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고 했다.

박지수는 언니들과 함께 훈련하면서 일찌감치 체력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래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거르지 않는다. 박지수는 “80~90㎏ 무게의 역기를 드는 스쿼트(역기를 어깨에 메고 앉았다 일어나는 운동)를 매일 한다. 그래도 100㎏ 넘는 무게를 거뜬히 들어올리는 언니들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고 말했다. 운동 선수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가족들이 박지수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아버지 박상관 전 감독은 딸에게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그간 갈고 닦은 역량을 아낌없이 쏟아내고 오라”며 격려했다.

박찬숙·정은순(45)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여자농구 대형 센터의 대를 잇는 게 박지수의 목표다. 그는 “대 선배님들처럼 훗날 ‘최고’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박지수는 …

생년월일: 1998년 12월 6일 키: 1m95㎝ 포지션: 센터

출신교: 수원화서초-청솔중-분당경영고 재학중 별명: 보물이

가족: 농구선수 출신 아버지 박상관(47·2m) 전 명지대 감독(전 서울 삼성), 배구선수 출신 어머니 이수경(48·1m80㎝), 농구에서 배구선수로 전향한 오빠 박준혁(19·2m4㎝)

주요경력: 2012·2014 U-17(17세 이하) 세계선수권 블록슛 1위

2013 U-19(19세 이하) 세계선수권 리바운드 1위, 2015 U-19 세계선수권 블록슛 1위

2015 대한농구협회 올해의 선수상, 2016 리우 올림픽 여자 농구 최종예선 국가대표

진천=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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