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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분양시장, 홀로 잘나갈 수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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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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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배
경제부문 차장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높은 분양가를 내건 재건축 아파트가 분양에 성공하면 다른 재건축 단지의 시세를 끌어올린다. 일부 아파트 분양 시장도 마찬가지다. 청약 경쟁률이 높아지고 웃돈이 붙으니 매매 차익을 노린 단타족이 늘고 있다. 수도권에선 6개월이 지나면 분양권을 전매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양도소득세를 피하기 위한 다운계약서가 작성되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러나 실물 경제 쪽 분위기는 다르다. 조선업과 해운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최근 발표되는 심리 지표와 경기 지표가 주춤하고 있다. 저금리 상황이지만 국내 증시의 주가도 박스권에 갇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아파트와 분양시장만 독야청청할 수 있을까.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지금의 일부 아파트의 고(高) 분양가는 순수한 펀더멘털에 근거하기보다는 정부의 규제 완화에 힘입은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시장에서 정부의 규제 여부와 강도는 핵심 변수다.

정부는 2014년 2·26 대책을 통해 분양권 전매 제한을 완화했다. 같은 해 7월 최경환 경제팀이 출범하면서 부동산 규제 완화는 속도를 냈다. 당시에 나온 말이 ‘한여름에 겨울옷’이다. 상황에 맞지 않는 과도한 규제를 풀자는 얘기다. 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재건축 규제가 완화됐고 지난해 4월엔 분양가 상한제가 폐지됐다.

세월호 참사로 경기가 위축됐던 당시엔 주택 시장을 회복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하지만 ‘한여름’이 계속될 수는 없다. 올해 2월부터 주택대출 규제가 강화됐지만 아파트 중도금 등을 빌리는 집단대출은 대상에서 빠져 있다. 아파트 분양시장만 ‘규제 프리존’에 가깝다. KDI도 지난해 말 DTI 규제 강화를 주장했고, 최근엔 “집단대출 등 대출규제의 사각지대를 축소시켜야 한다”고 제시했다.

주택 공급 과잉 문제는 지난해 말부터 논란이 됐다. 당시 국토교통부는 “과거 공급 물량이 적었고, 2016년 분양 물량이 30% 정도 줄 것”이라며 이를 일축했다. 올해 4월까지의 통계를 보면 분양승인 물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 주는 데 그쳤고, 주택 인·허가는 30%나 증가했다. 부동산 정보업체에 따르면 이번 여름철에 상당한 분양 물량이 나온다고 한다.

정부 입장에선 경기 상황이 어려운데 자칫 부동산 시장을 냉각시킬 수 있는 정책을 쓰기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상반기 통계가 정부의 예측과 다르다면 더 이상 주저해선 안 된다. 송 연구위원은 “장기적으로 실물 경제와 괴리된 상태에서 부동산 값만 오를 수는 없다. 내년 연말 이후의 본격적인 입주 시점이 경기 변동과 맞물리면 입주 지연에 따른 건설사 부실에 은행 건전성 문제까지 생길 수 있다”는 경고를 빼놓지 않았다. 한파가 올 징후가 뚜렷하다면 ‘든든한 옷’을 준비하는 게 마땅하다.

김원배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