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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걸음질 치는 게 어디 스포츠뿐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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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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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수
JTBC 디지털뉴스룸 부장

8월 5일 리우 여름 올림픽 개막까지 오늘로 꼭 60일 남았다. 우리나라의 리우 목표 성적은 ‘10-10’(금메달 10개 이상 획득과 종합순위 10위 이내 진입). 대한체육회가 예상하는 금메달 후보 종목을 보니 ‘예상대로’ 양궁·배드민턴·펜싱·유도·사격·태권도다. 102년 만에 올림픽 무대로 돌아온 골프가 금메달 후보에 포함된 점(우리 여자 골프가 세계 최강이니 당연하겠지만)이 새로울 뿐 나머지는 1990년대의 데자뷔다.

2016 리우 목표가 2008 베이징이나 2012 런던 때와 비교해 달라진 점, 바로 메달 후보 종목에 수영이 없다는 것이다. 올림픽의 해, 우리 남자 수영은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단 한 명의 올림픽 A기준 기록 통과자도 내지 못했다. 수영은 국가별로 A기준 기록 통과자 2명까지 올림픽에 나간다. A기준 기록 통과자가 없으면 B기준 기록 통과자 1명이 나갈 수 있지만 출전이 보장된 건 아니다. 어쩌면 출전 선수를 구경조차 못할 수도 있다.

지난 4일 서울 목동 실내빙상장에서 ‘올댓스케이트 2016’ 아이스쇼가 열렸다. 출연자 중에 김연아는 없었다. 그는 무대 밖에서 후배들을 격려했고 쇼를 지켜봤다. 이날 아이스쇼 관객은 3000명이 되지 않았다. 김연아가 출연했던 과거 아이스쇼는 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관객도 늘 1만 명에 육박했다. 그때와 비교도 안 될 만큼 초라하다. 게다가 이번 아이스쇼는 타이틀 스폰서도 없었다.

김연아를 보며 피겨에 입문한 ‘연아 키즈’가 자라고 있다지만 현 상황만 본다면 우리 피겨는 김연아 이전 시대로 돌아갔다. 느낌뿐만 아니라 현실도 그렇다. 지난 3월 피겨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싱글에서 우리 선수들은 14, 18위에 머물렀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은 세계선수권 출전자 순위의 합이 30 이내인 국가에만 다음 대회 출전권 2장을 준다. 김연아가 2장으로 늘려놨던 출전권이 도로 1장이 됐다.

박태환의 2008 베이징 수영 자유형 남자 400m 금메달과 김연아의 2010 밴쿠버 피겨 여자 싱글 금메달 등 불모지 종목의 메달에 온 국민이 감격했고 “우리도 하면 할 수 있다”고 얘기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는 “올림픽 메달 종목을 다각화하겠다” “제2의 박태환, 김연아를 키우겠다”며 갖가지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적지 않은 예산도 투입됐다. 베이징으로부터 8년, 밴쿠버로부터 6년이 각각 흐른 지금, 우리가 다다른 곳은 박태환과 김연아 이전의 시간이다. 지난 2일 우리 축구가 스페인에 1-6으로 졌다. 이 역시 ‘오대영 패배’가 다반사던 2002 한·일 월드컵 이전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곰곰이 생각해봤다. 과거로의 퇴행이 어디 스포츠뿐인가. 더럽고 탁한 대기, 구조적 비리 속에 목숨을 잃는 근로자들, 밤길이 두려운 여성들까지. 앞으로 나아가는 세상과 달리 우리를 둘러싼 대부분의 일상이 뒷걸음질 치고 있는 것을.

장 혜 수
JTBC 디지털뉴스룸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