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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출소 넉 달 살인범 “수락산서 처음 만난 사람 죽이려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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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 강도살인죄 15년 복역 뒤 1월 출소
경찰 우범자 관리대상서 누락
범행 전까지 소재도 파악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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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산 60대 여성 살인사건 용의자 김모씨가 30일 오전 서울 노원경찰서로 이송되고 있다. [뉴시스]

서울 수락산 등산로에서 60대 여성 등산객을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모(61)씨가 부실 행정으로 인해 경찰의 우범자 관리대상에서 제외돼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과거 강도살인을 저질러 15년간 복역한 뒤 지난 1월 출소했으나 살인을 저지르기 10여 일 전까지 경찰은 그가 출소 후 어디서 뭘 하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30일 서울경찰청과 노원경찰서 등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1월 19일 대구교도소에서 출소했다. 2001년 경북에서 저지른 강도살인죄로 구속돼 15년을 복역하고 만기출소했다. 구속될 때 김씨는 서울 신림동의 한 아파트에 살았다. 따라서 이 지역을 관할하는 관악경찰서는 올해 1월 7일 교정시설로부터 김씨가 곧 출소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관악서 측은 출소한 김씨의 주거지가 변경돼 ‘불명’인 상태로 주민센터에 등록돼 있는 것만 확인하고는 우범자 등록은 하지 않았다. 살인전과가 있는 김씨를 관리대상에 넣지 않았다는 얘기다.

관리대상 우범자는 세 등급으로 나뉜다. 매월 1회 이상 첩보를 수집해야 하는 ‘중점관리’, 3개월에 1회 이상 첩보를 수집해야 하는 ‘첩보수집’, 관련 자료를 보관해 범죄 발생 시 수사자료로 활용하는 ‘자료보관’ 등이다.

경찰은 2개월 뒤인 3월 7일에야 김씨가 경기도 안산시 신길동으로 전출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지만 이마저도 무시했다.

관할서인 안산단원경찰서로 김씨의 전출 사실을 통보하지도 않았다. 관악서는 그로부터 두 달여가 지난 5월 16일 경찰청에서 분기에 한 번씩 실시하는 ‘우범자 특별집중관리 기간’이 되자 뒤늦게 김씨를 우범자로 편입시켰다. 김씨가 수락산에서 살인을 저지르기 불과 10여 일 전이다. 관악서 관계자는 “출소한 김씨의 주소지가 소재 불명으로 돼 있는 것을 보고 첩보수집 대상자로 등록하는 게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했다”며 “안산단원서에 뒤늦게라도 통보를 하지 않은 것도 잘못”이라고 시인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위치추적, 통신수사 등 실질적으로 김씨의 소재를 확인할 수 있는 제도적 수단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 용의자 김씨, 최근 극심한 생활고
중계동서 노숙…10여 일 물만 마셔
교도소 다시 가려 범행했을 수도

그사이 김씨는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한다. 다시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로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김씨는 결국 지난 16일 안산에서 지하철을 타고 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공원 등에서 노숙생활을 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노원구에서 공공근로를 한 적이 있어 주변이 익숙했다”며 “출소 후 경마장에서 딴 돈 등으로 생활했고 서울로 상경한 16일 이후에는 노숙을 하며 물만 먹고 살았다”고 말했다. 경찰이 김씨를 우범자로 중점 관리했다면 그가 등산객을 무참히 살해하는 일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경찰청은 지난해 9월 김일곤(49·구속)이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주모(35·여)씨를 납치·살해한 뒤 트렁크에 시신을 유기한 사건 이후 우범자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2013년 출소한 김일곤이 주씨 살해 전 경기도 의 한 대형마트에서 또 다른 여성을 납치하려다 미수에 그친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김일곤의 출소 예정 사실을 교정시설이 경찰에 알리지 않은 탓에 경찰의 우범자 관리 명단에 김일곤이 빠져 비난 여론이 일었다. 경찰은 이를 계기로 우범자의 재범 위험성을 검토해 관리 등급을 조정하고, 소재 확인에 주력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채 1년도 되지 않아 수락산 등산객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노원경찰서 관계자는 “경찰이 김씨와 함께 상계동 주택가에서 찾은 흉기와 김씨의 점퍼에 묻은 혈흔에서 피해자의 DNA가 검출됐다”며 “김씨가 도주하는 장면과 16일 주방도구 판매점에서 칼을 구입하는 CCTV 영상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정확한 범행동기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김씨가 ‘전날 밤 10시에 수락산에 올라가서 처음 만난 사람을 죽이려고 했다’고 진술했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김씨를 용의자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채승기·김준영 기자 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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