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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경쟁서 참여·힐링으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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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호 11면

44년 역사의 장학퀴즈가 달라졌다. 문제를 푸는 10개 팀과 이들을 응원하는 그룹으로 나눠 전교생이 퀴즈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학생들은 응원하는 팀을 격려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문제를 맞힌 뒤에는 동문선배와 기쁨을 나누기도 한다. [사진 SK그룹]

이달 20일 경기도 안양시 신성고 강당. 고교생 대상 퀴즈 프로그램인 장학퀴즈 녹화가 한창이다. 학생 5명씩 이뤄진 10개 팀이 문제 풀이에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예상했던 것과는 다소 다른 분위기다. 퀴즈 프로그램 특유의 정숙함이나 치열한 고민보다는 흡사 아이돌 그룹 콘서트장 같은 열기와 웃음이 느껴진다. 과거 학교를 대표하는 모범생 1~2명이 나와 문제 풀이에 집중하던 것과는 분명 달라진 모습이다.


장학퀴즈가 확 바뀌었다. SK그룹이 1973년 2월부터 후원해 온 고교생 퀴즈 프로그램 장학퀴즈가 방송 44년 만에 대대적인 변신을 하고 있다. 경쟁보다는 협력을, 여기에 더해 ‘힐링(healing)’을 더하기 위한 배려다. 달라진 장학퀴즈의 새 이름은 ‘장학퀴즈-학교에 가다’다. 새로운 장학퀴즈는 스튜디오를 벗어나 전국 각지의 고등학교로 직접 찾아간다. 안양 신성고는 그 7번째 학교다. 문제 풀이 중간중간 동문 선배가 나와 재학생을 격려하는 건 이번에 새롭게 도입된 포맷이다.


프로그램 진행 방식도 달라졌다. 과거의 장학퀴즈가 학교의 명예를 건 소수 수재들 간의 경쟁에 집중했다면, 현재는 소수의 수재보다는 학교 전체 학생의 참여를 독려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이날 문제 풀이에 직접 참여한 학생은 50명(팀당 5명씩 10개 팀)이다. 시상 방식도 달라졌다. 과거엔 참가자 중 가장 많은 점수를 얻은 이가 우승했지만 이제는 참가자 전체가 힘을 합쳐 문제를 풀고 문제마다 걸려 있는 별점을 획득해 이 점수가 100점을 넘으면 학교 전체에 장학금이 지원되는 식이다. 과거 결승전에 오른 5명의 학생 중 4등을 한 서울의 한 명문여고 학생이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무기정학 처분을 받은 일까지 생겼던 것에서 한참이나 달라진 모습이다. 당시 여학생은 장학퀴즈 제작진이 나서 학교를 설득한 끝에야 겨우 징계가 풀렸다.


경쟁에 지친 후배를 위해 동문 선배도 프로그램 중간중간 나와 격려한다. 신설된 ‘동문 선배와의 만남’ 코너엔 그간 영어강사 오성식, 축구선수 정조국, 방송인 현영, 산악인 엄홍길, 가수 홍경민, 야구선수 양준혁 등이 참여해 후배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조언을 담은 즉석 강연을 했다. 대구 상원고를 졸업한 양준혁은 “프로야구 선수 생활 18년 동안 항상 1루까지 전력을 다해 뛰었다”며 “한 발 더 전진할 수 있는가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후배들에게 자신의 성공비결을 전했다. 대원고 졸업생인 홍경민도 “고등학교 1학년 노래자랑 시간에 우연치 않게 내 꿈을 발견했다”며 “정답이 정해진 인생은 없는 만큼 다양한 분야에 치열하게 도전하고 배우며 생활해 달라”고 당부했다.


최태원 회장, 새 포맷 아이디어 내는 등 관심 장학퀴즈는 73년 2월 18일 MBC에서 첫 방송을 시작했다. 97년부터는 EBS로 옮겨 매주 토요일 방송된다. 학생 대상 퀴즈 프로그램이 반세기 가까이 이어왔다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다. 그간 장학퀴즈는 2100여 회의 방송 횟수와 출연 학생 1만7000여 명이라는 전인미답의 기록을 세웠다. 장학퀴즈의 시작과 성공은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과 최태원(56) 회장의 대를 이은 인재양성 철학에 힘입은 바 크다. 사실 장학퀴즈가 시작된 70년대 초에는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퀴즈 프로그램은 성공하기 힘들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평소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가난이란 현실을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인재 육성”이라고 강조했던 최종현 회장은 장학퀴즈 후원을 결정했다.


이런 관심은 단순 후원에 그치지 않았다. 최종현 회장은 해마다 SK그룹(당시 선경그룹) 본사로 장원을 차지한 학생들을 초청해 식사를 했다. 그때마다 그는 “여러분은 졸업하고 선경에 오면 안 돼. 오지마!”라고 얘기하곤 했다. 이유를 묻는 학생들에게 그는 “더 좋은 데로 가서 좋은 머리로 나라를 위해 일해 달라”고 당부했다. 선경의 장학생이지만 나라를 위해 일해 달라는 의미였다.


장학퀴즈가 방송된 44년 동안 우리 사회도 놀라운 성장을 이룩했다. 그 중심에는 장학퀴즈 세대가 있다. 장학퀴즈 출신들은 오늘날 학계·언론계·법조계·의료계·재계 등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해 활발히 활동 중이다. 국회의원 김두관(김포갑·전 경남도지사) 당선자, 서울대 김세직(경제학부) 교수 등을 비롯해 뮤지컬 제작자 송승환, 앵커 한수진, 가수 김광진 등도 장학퀴즈 출신이다. 장학퀴즈 출신자 모임인 ‘수람회’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인재 육성에 대한 선친의 관심과 애정은 최태원 회장으로 이어졌다. 최 회장 역시 장학퀴즈 포맷에 대한 아이디어를 직접 내는 등 애정을 보이고 있다.

부상도 만년필·자전거에서 노트북·PDA로 오랜 세월 이어져 온 만큼 장학퀴즈의 역사가 바로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반영하기도 한다. 특히 장학퀴즈의 역대 상품들을 보면 그 당시 학생들이 가장 원하는 ‘워너비 아이템’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방송 초기인 70년대엔 스마트 학생복, 양장지, 고급 만년필, 탁상시계 등이 부상이었다. 80년대 들어선 스마트 자전거, 학생용 가방, 체육복, 오디오 테이프 등이 등장했고 90년대엔 전자 영어사전과 도서상품권이 주요 선물이 됐다. 2000년대에는 노트북 컴퓨터, 디지털카메라, 개인휴대용단말기(PDA) 등이 제공됐다.


과거 장학퀴즈 우승자가 나오는 마을에선 동네 잔치가 열렸다. 당시 장학퀴즈 장원을 낸 학부모는 ‘한 턱’을 내는 게 상식처럼 여겨졌다. 그러다 보니 우승 장학금을 잔치 값으로 소진하는 일이 많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최종현 회장은 장학금 제도를 바꿔 현금으로 주던 장학금을 장학증서로 대체했다.


장학퀴즈에도 고민이 있다. 방송 환경 자체가 급격하게 변하고 있고 학생들의 시청 패턴도 빠르게 달라져서다. 8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장학퀴즈가 방송될 시간에는 공부 좀 한다는 전국의 중·고교생 전부가 TV 앞으로 모일 정도였지만 지금은 이런 뜨거운 인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하지만 ‘인재를 길러낸다’는 장학퀴즈의 존재 가치나 위상이 약해진 것은 아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사회공헌 브랜드의 위상도 여전하다. 김세직 교수는 “장학퀴즈는 국민에게 지식을 늘리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가치 있는 일인지 알림으로써 교육을 통한 경제성장에 큰 공헌을 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SK그룹에 따르면 장학퀴즈의 핵심 타깃인 청소년 80% 이상이 장학퀴즈의 유익성과 필요성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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