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시장 충격 외면한 홈쇼핑 ‘일벌백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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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아
경제부문 기자

홈쇼핑업계 3위 롯데홈쇼핑이 ‘영업정지’라는 초유의 징계를 받게 됐다. 미래창조과학부는 27일 롯데홈쇼핑에 ‘6개월 동안 프라임 타임 영업정지’ 징계를 내릴 예정이다. 프라임 타임이란 소비자가 물건을 가장 많이 사는 오전 8~11시, 오후 8~11시 총 6시간을 일컫는다. 하루 매출 절반이 나오는 황금시간 대에 단색 정지 화면만 틀어야 한다.

롯데가 징계를 받는 이유는 지난해 4월 사업 재승인을 받아내는 과정에서 납품비리로 형사 처벌을 받은 임직원을 8명에서 6명이라고 적어냈기 때문이다. 롯데는 이후 미래부에 2명이 더 있다고 보고했고, 미래부는 “앞으로 불공정 거래 관행을 개선하라”며 5년 사업 유효 기간을 3년으로 줄여 허가를 내줬다. 하지만 올초 감사원은 비리 임직원 누락은 절차상 심각한 하자라며 롯데를 징계하라고 했다. 그 결과 미래부는 방송법상 가장 센 제재인 업무정지를 꺼내 들었다.

미래부가 회초리 대신 곤장을 든 명분은 ‘일벌백계’다. 하지만 그 백가지 피해는 롯데홈쇼핑에 물건을 방송하는 중소 협력사들에게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롯데홈쇼핑은 이번 영업정지로 최소 5500억원의 손실을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적자가 나더라도 롯데 같은 기업은 망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롯데홈쇼핑과 거래하는 800여개 협력업체 중 70%에 달하는 560개의 중소기업이다. 이 중 롯데와 단독계약을 맺은 곳이 173개나 된다. 롯데홈쇼핑에 장류를 납품하는 A업체 대표는 “매출의 80%가 롯데에서 나는데 회사 문을 닫게 생겼다.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고 날벼락을 맞았다”고 말했다.

연쇄 피해도 우려된다. 단독 및 인기 상품을 다른 시간대로 옮기면 원래 그 시간대에 배치된 업체가 피해를 보고, 다른 홈쇼핑에 입점해도 그쪽 홈쇼핑 협력업체가 피해를 볼 수 있다. 경쟁 홈쇼핑들도 피해 중소업체 입점을 꺼려 벌써부터 ‘줄도산’이란 험악한 말까지 나온다.

징계는 적시에 타당하게 이뤄져야 최고의 효과를 낼 수 있다. 미래부는 차라리 지난해 재승인 때 롯데를 일벌백계로 삼았어야 한다. 2명의 비리 임직원을 추가로 보고받고도 사업을 승인해 줬다가 1년이 지난 이제와서 최고 강도의 제재를 내리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 본 때만 보이려 할 뿐 협력사 피해와 시장의 혼란은 안중에 없으니 탁상행정이란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중소 협력사들은 미래부에 상황을 감안해달라는 탄원서를 계속 내왔다.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질 경우 미래부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소아 경제부문 기자 i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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