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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화 의장이 정치를 못 떠나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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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유미 기자 중앙일보 정당출입기자
강정현 기자 중앙일보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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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미
정치국제부문 기자

임기는 끝났지만, 끝이 아니라고 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25일 퇴임 기자회견에서 “국회의원은 떠나지만 정치는 떠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26일 자신이 이사장을 맡는 싱크탱크 ‘새 한국의 비전’ 창립기념식을 연다. 싱크탱크엔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 더불어민주당 진영 의원, 국민의당 정대철 고문과 김동철 의원 등 여야를 망라한 인사들이 참여한다. 정계개편설 속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그가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말은 그래서 차기 대선을 앞두고 자기 정치를 본격화하겠다는 선언으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5선 국회의원을 지낸 그가 기자회견에서 공개적으로 밝힌, 정치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이랬다.

“지난 20년간 국가의 녹(祿)을 받은 사람으로서 ‘이런 정치의 모습’을 보고 그냥 떠나는 데 죄책감이 생겨서….”

최악의 국회로 낙인찍힌 19대 국회 수장으로서 그런 단상이 들었을 법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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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정의화 국회의장이 국회에서 퇴임 기자회견을 열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강정현 기자]

그가 의장으로 있던 2년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다. 4·13 총선을 코앞에 두고도 선거법 협상을 끝내지 못해 선거구가 없었던 초유의 상황, 테러방지법 통과에 반발한 최초의 필리버스터 정국 등등.

하지만 정 의장은 ‘이런 정치의 모습’으로 두 개의 ‘국회법’을 콕 찍어 말했다. 하나는 지난 1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상시청문회법), 다른 하나는 2012년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국회선진화법)이었다.

상시청문회법은 상임위별로 국정 현안에 대한 청문회를 가능하게 하는 내용, 선진화법은 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의 의결 정족수를 요구하는 내용 등이 골자다. 상시청문회법은 ‘행정권 침해’를 이유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예상되고 있고, 선진화법은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심판(26일 선고)을 기다리고 있다.

사실 두 개의 국회법 모두 내용은 이상적이란 말을 듣는다. 법조항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대한민국 국회의 낮은 수준이 문제라는 게 정 의장의 인식이었다. 정 의장은 “대화와 타협이 원만하게 이뤄질 수 있는 선진 수준의 정치, 그런 국회만 된다면 초다수결인(의결정족수 5분의 3) 국회선진화법이 있어도 된다”고 강조했다. 상시청문회법의 경우 국정감사를 폐지하고서라도 지켜보자는 게 정 의장의 주장이다. 하지만 바로 그가 말한 ‘이런 정치의 모습’ 때문에 미국에선 일상화돼 있는 청문회 문화가 한국에선 걱정거리다.

국회법은 1948년 제정된 이후 68년간 76차례 개정됐다. 매년 평균 한 차례 이상 고쳤지만 아직도 국회 운영은 선진 국회와 거리가 멀다. 이제 20대 국회에선 ‘이런 정치’ 때문에 정계를 떠나지 못하는 국회의장이 나와선 안 될 것이다.

글=박유미 정치국제부문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