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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서 女 훔쳐봐도 무죄?…"법 개정 필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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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화장실'이 아니라는 이유로 술집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던 여성을 훔쳐본 남성에게 잇따라 무죄가 선고되자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주지법 형사2부(부장 이석재)는 25일 "화장실에서 여성을 훔쳐 본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회사원 강모(35)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검찰의 항소를 기각했다"고 밝혔다.

강씨는 2014년 7월 16일 오후 9시10분쯤 전주시 덕진구의 한 술집의 남녀 공용 화장실에 들어가는 A씨(26·여)를 뒤따라가 옆 칸에서 용변 보는 장면을 훔쳐봤다.

검찰은 강씨가 성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공중화장실에 침입했다고 보고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1심과 항소심 법원은 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문제의 화장실이 법이 정한 '공중화장실'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항소심 재판부는 "사실조회 회신서에 첨부된 전주시 덕진구에 있는 공중화장실, 개방화장실, 이동화장실, 간이화장실 현황에는 이 사건의 화장실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 "해당 화장실은 술집 영업 시간에 맞춰 개방·폐쇄해 술집을 이용하는 불특정 다수 손님을 위해 제공되는 점 등을 종합하면 결국 공중화장실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원심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덧붙였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12조는 성적 욕망을 만족시킬 목적으로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공중화장실에 침입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규정돼 있다.

논란이 된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공중화장실은 모두 5가지다. 공중화장실(공중이 이용하도록 제공하기 위해 국가, 지방자치단체, 법인 또는 개인이 설치하는 화장실)과 개방화장실(공공기관의 시설물에 설치된 화장실 또는 특별자치도지사·시장·군수·구청장이 지정한 화장실), 이동화장실(많은 사람이 모이는 행사 등에 일시적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설치하는 화장실), 간이화장실(공중화장실을 설치하기 어려운 지역에 설치한 소규모의 화장실), 유료화장실(화장실의 설치·관리자가 이용자에게 이용료를 받을 수 있는 화장실) 등이다.

이 때문에 법원이 지나치게 법 조문에 얽매여 '성폭력범죄 피해자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법 제정 취지를 외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법대로라면 소규모 상가에 있는 술집 화장실에서 비슷한 범죄가 일어나도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17일 '묻지마 살인 사건'이 발생한 서울 강남 주점의 공용 화장실도 법이 정한 공중화장실이 아닌 개인 화장실이었다.

이런 논란을 막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경기 화성을)이 지난해 10월 공중화장실의 개념을 확대하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19대 국회가 마무리됨에 따라 자동 폐기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전북지부 이덕춘 변호사는 "형벌 법규는 엄격하게 해석돼야 하지만 국민들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도록 공중화장실의 인정 범위를 넓히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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