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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금령만 내리면 할일다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괴저병(괴저병)소동으로 생선의 값어치가 말이 아니다.
서울만해서 하루평균 6백t쯤 되던 수산물의 유통물량은 요즘 3분의1가량이 줄었고 특히 피조개등 어패류는 절반쯤으로 뚝 떨어졌다는 보도다.
값은 더 말할게 없어 심한 경우 10분의1정도로 폭락했으나 그래도 임자가 없어 산지로 다시 내려가는 현상까지 보이고있다. 이 바람에 휴양지나 도시의 횟집들이 개점휴업상태인 것은 고사하고 어민들의 생계걱정은 눈에 보이는듯 선하다.
그렇게 봐서 그런지 화식집에서 주는 회의 분량은 전보다 많아진것 같고 금쪽처럼 아껴주던 때에 비기면 어쩐지 맛도 덜한듯한 느낌마저 준다.
감염이 되면 피부가 썩고 사흘만에 사망하는 공포의 병이 괴저병이다. 듣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가뜩이나 한여름의 날생선은 식중독의 위험이 있다해서 꺼림칙한 터에 특효약이나 치료법이 제대로 개발되어 있지 않아 치사율 98%라는 무서운 병에 걸릴지도 모른다고 하면 누구나 기겁할 노릇이다.
그러나 병에 걸리면 그렇다는 것이지 건강한 사람의 경우는 걱정할 필요가 없고 건강하지 않은 사람도 끓이거나 얼려먹으면 아무 탈이 없기 때문에 생선이나 어패류기피증은 쓸데없는 과민반응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뿐만아니라 균이 있는곳은 비늘등 어패류의 겉부분과 아가미·내장부분이지 생선의 살속에까지 침투하는것은 아니라서 그 부분만 갈라내고 먹으면 회로 먹어도 아무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약도 많이 먹으면 독이 되는법이다. 음식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독성으로 치면 복어처럼 무서운것도 없다. 복어의 알과 피에 있는 테트로독신이라는 독은 체중의 50만분의1 분량만 먹어도 생명을 잃게된다.
식량부족이 심각하던 50년대에 내다버린 복어알을 먹고 죽는 사건이 빈발한 것은 지금도 기억에 새롭다. 그렇지만 독이 있는 부위를 들어내면 복은 다른 어떤 생선보다 맛있는 생선이 된다. 미식가들 가운데는 복의 진미를 즐기기 위해 일부러 피를 섞어 먹기도 한다. 독을 적당히 섭취하면 심리적인 「이능」효과로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인간의 음식문화 발달사란 독을 제거하면서 생존에 필요한 자양분을 발견해온 과정에 다름아니다.
몸에 좋은 것이라면 뱀도 지렁이도 굼벵이도 마구 먹어대는 인간의 그 왕성한 식욕이 몇몇 어패류에 섞여있는 비브리오 불니피쿠스균 때문에 좌절한다는것은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어패류공포증을 몰고 온 1차적 책임이 당국에 있음은 부인키 어렵다. 이 병의 원인균은 76년 미국의 질병통제센터에서 분리해냈으며 국내에서는 81년에 처음 분리해냈다. 그때에도 병이 있었고 희생자도 있었다는 얘기다.
그랬던걸 처음 발견한듯 판금령부터 내리는등 법석을 떨어놓았으니 국민들이 어패류 공포증을 갖도록 부추긴 결과가 되고 말았다.
보사부로서야 전가의 보도인양 판매금지만 하면 그만인 줄 알았을게다. 「보건위생」이란 단순한 시각에서 보면 못할 일을 한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실무자들이 탁상에서 세운 결정하나가 몰고 온 영향은 얼마나 큰 것인가.
누구보다도 출어를 해보았자 본전도 못 건지는 어민들의 처지는 딱하기만 하다. 주무관청인 수산청이 어민들을 위한 특별대책을 세우고 있다지만 적어도 이번 판금결정이 경솔했다는 비평만은 면할수 없게 되었다.
설마하니 시중에 나도는 소문처럼 정부가 소값이 떨어지니까 쇠고기를 많이 먹으라는 뜻으로 괴저병얘기를 퍼뜨렸을리야 있겠는가.
하지만 전후사정으로 보면 그러한 추측이 전혀 황당무계하게 꾸며낸 것으로만 들리지 않으니 어쩌랴.
경우는 약간 다르지만 3년전엔가 일본에선 세균에 오염됐다고 사과가 팔리지 않자 관계장관들이 TV에 출연, 모두들 기피하는 문제의 사과를 시식, 안심하고 먹도록 국민들을 설득한 일이 있다.
미국에서도 우유가 안 팔리자 대통령이 TV에 나와 우유마시기를 시범한 일이 있고 「나까소네」 일본수상이 외제상품 구입을 권유하기위해 직접 백화점에서 쇼핑을 한 화면을 우리는 얼마전에 보았다.
괴저병공포증이 전국적으로 번진것은 따지고 보면 어이없는 해프닝이다. 그 사실을 증명하려면 백마디 말보다도 관계자들이 대중앞에 나와 피조개·바지락·게·고막과 같은 어패류를 안전하게 먹는 방법을 시범해 보였으면 한다.
비단 수산물의 판매를 높여 어민들의 생계를 보호하자는 취지에서만이 아니다.
정부가 국민과의 거리를 좁히고 신뢰를 회복시키려 하는일은 비록 단발에 그치는 「행사」라 할지라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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