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TONG] [두근두근 인터뷰] 연극 연출가 이래은 "관객의 상상이 무대를 채우죠"

TONG

입력

업데이트

by 김혜나

2016 국립극단 청소년극 릴-레이 '고등어'를 연출한 이래은 연극 연출가

2013년부터 국립극단은 청소년극의 의미와 사회적 역할에 대한 탐색과 도전의 일환으로 ‘국립극단 청소년극 릴-레이’ 프로젝트를 해 왔습니다. 세 번째 무대를 맞이하는 올해 국립극단은 연극 ‘고등어(배소현 작, 이래은 연출, 5월 19일~29일)’와 ‘죽고 싶지 않아(안무·연출 류장현, 6월 9일~19일)’를 '청소년극 릴-레이'로 선보입니다.

가운데 펼쳐진 무대를 두고 관객들은 여중생의 이야기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간결한 무대에서는 아이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극대화 된다.

첫 번째 작품은 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고등어’입니다. 공통점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어 보이는 경주와 지호 두 소녀는 서로의 힘든 점을 이야기하며 친구가 됩니다. 같은 반 친구들의 따가운 눈총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막 나가는 언니와 엄마가 전부인 '집구석'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이들은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그리고 통영항의 고등어 잡이 배로 둘만의 여정을 떠납니다. "있는데 그냥 있을 뿐이야", "답답한 내가 제일 답답해", "학교는 힘들고 답답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줘야 하는 거 아닐까?" 연극은 열다섯 살 소녀들의 고민을 풀어내며 '여중생'을 바라보는 보편적인 시선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2005년 '고양이가 말했어’로 연극 연출을 시작한 이래은 연출은 ‘아폴로 프로젝트(2014)’ '날개, 돋다(2015)' 등 어린이·청소년극을 중심으로 섬세하고 독특한 작품 세계를 펼쳐왔습니다. '고등어'에서도 오브제, 사운드와 움직임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통해 새로운 형식에 도전한 그를 TONG기자단이 만나 봤습니다.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고등어'의 주인공 경주와 지호를 보며 연출님의 학창시절이 궁금해졌어요.
"상태 안 좋았어요.(웃음) 극렬하게 다른 두 면이 있었던 거 같아요. 친구들하고 놀고 싶어서 애 태우다가, '탁' 잘라버리고 조용히 혼자 있거나 음악 듣고 그랬거든요. 그렇게 돌변하니까 친구들이 우주인 같다는 얘기도 했어요. 지금도 여전해요. 사람이 안 변하더라고요."

헤드셋을 끼고 고독을 즐기는 '경주'는 평범한 '지호'에게 동경의 대상이다.

- 경주가 교실에서 헤드셋 끼고 노래를 듣는 척 하면서 혼자 있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어요.
"경주가 헤드셋을 끼고 외부의 자극을 차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다 듣고 있는 거잖아요. 친구들이 뒷담화 하는 얘기도 다 들었을 테고. 그렇게 자기 안테나를 열고 있는 아이라고 생각했어요. 진짜로 외부의 소리를 철저하게 차단했으면 수조 속에서 산소 호흡기로 겨우 연명하는 생선 같은 아이가 되었을 거예요. 아픈데 욕구는 계속 있고, 소통은 해야겠고 그런 갈등을 갖고 있는 경주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더라고요."

- 경주는 진짜 특별한 아이 같았어요. 지호가 좋아하는 걸 말할 때, 경주는 싫어하는 걸 먼저 말하잖아요.
"경주는 실패의 경험이 많은 아이라고 생각했어요. 소통하려고 시도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실패했을 거예요. '칼빵'도 해보고, 남자친구를 사랑한다고 외쳐도 봤고 엄마한테도 그랬을 거예요. '그렇게 수많은 소통의 실패를 겪은 사람은 어떤 태도를 갖고 있을까?' 이런 얘기를 배우랑 나눴죠. 화를 낸다고 상대가 화를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울어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아이, 감정이 올라와도 누르는 아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경주와 지호는 친구가 되고 둘만의 여정을 떠난다.

- 반면, 지호는 정말 평범한 아이예요. 그런 지호와 경주는 친구가 되었죠.
"둘이 고독해서 만난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호는 다른 친구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무시 당하고, 눈치가 없다고 핀잔을 듣잖아요. 소통이 서툴 때 생기는 거부라고 생각해요. 지호는 더 이상 거부 당하지 않기 위해 일기장이라는 자신만의 세계에 말을 쏟아내고요. 그렇게 원하지만 자발적이지만은 않은 각자의 세계 속에 가느다란 고독의 실이 있었고 서로를 이어주었던 거죠."

- 특이한 경주보다 평범한 지호를 캐스팅을 할 때 더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지호를 연기한 정지윤 배우를 처음 만났을 때 이제 막 알을 깨고 나오는 새의 힘이 보였어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보물 같았죠. 결국 그 힘이 공연을 만드는 동안 저력을 발휘했고요. 경험이 많은 다른 배우 사이에서 망설여지기도 하고 어렵기도 했을텐데 힘든 걸 한 번도 드러내지 않고 잘 해냈어요."

- 지호에게 경주는 동경의 대상이죠. 경주는 그냥 툭툭 걸어가는 건데 지호는 경주의 발걸음을 우아하게 헤엄치는 고등어처럼 느끼잖아요. 저는 굉장히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같이 공연을 봤던 어른들은 그 장면을 보고 웃으시더라고요.
"경주를 표현할 때 앞머리를 꼭 내리자고, 앞머리로 얼굴을 좀 가려줘야 폼이 나는 거 아니냐 그런 얘기도 했어요.(웃음) 아이들이 딱히 허세를 부리는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환상은 왜곡된 거잖아요. 웃기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고 여러 면이 뒤섞인 것 같아요.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상대가 너무 아름답고 멋있어 보이지만 진짜 모습은 그렇지 않을 수 있잖아요. 그건 감각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관객들도 경주를 보면서 환상적인 면과 웃긴 면을 다 봤을 거 같아요. 그래서 경주를 바라보는 지호의 시선을 표현할 때 조명을 강하게 비춰서 아름답게 만드는 것보다 무대의 빈 곳에서 배우들의 간결한 연기로 표현하는 게 환상을 더 잘 구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장면을 만들면서 정말 별 짓을 다 했거든요. 아크로바틱도 하고 거꾸로 매달려서 발길질도 해보고 그랬는데, 간결한 게 유머와 환상을 모두 담을 수 있겠다는 그런 결론을 내렸죠."

- 연기뿐만 아니라 소품도 굉장히 적고, 음악도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 느낌이 강했어요.
"배우, 스태프들과 같이 만들어서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죠.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그러다 실패도 하고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포기도 하고 그러다가 정말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에서 힘을 발견하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몸에 대한 감각을 공유하는 게 청소년 극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대사와 텍스트를 소리로 구현하면서 한 쪽에서는 정보가 일어나고, 다른 쪽에서는 상황을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죠. 실제로 라면을 끓여 먹자 말자, 바나나 우유를 마시자 이런 논쟁도 했어요.(웃음) 결국 싹 다 빼고 소품을 최소화 하고, 빈 곳에 말을 채워 넣었죠. 그렇게 시간이 늘어난 공간에 말이 들어가고 움직임도 최소한으로 하고 달릴 때의 역동감, 아이들의 호흡만 남겼어요. 배우들이 그렇게 구현을 잘 해내기도 했고요."

경주와 지호 모두 고독했기에 아이들은 서로 마음을 연다.

- 막 친해진 두 아이가 급식실과 교실에서 쪽지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직접 주고 받아도 되는 건데 배우들의 동작이나 사물을 전달하는 방식이 음악과 함께 천천히 춤추듯이 진행되잖아요.
"쪽지를 주고받는 수많은 시간과 그 시간 동안에 느껴지는 설렘이 있잖아요. 사람이 누군가와 특별한 관계를 맺으면 온몸의 감각이 달라져요. 시간의 감각도 달라져서 정말 짧은 순간 하나하나가 특별해지고, 그런 감각을 담아낸 장면이에요. 실제로 배우들과 우리끼리 쪽지를 써서 주고받아 보기도 했어요."

갑판 위로 떨어지는 고등어는 하얀 공으로 표현되어 짜릿한 환희를 선사한다.

- 각자 고민을 가진 두 아이가 노량진을 거쳐 통영으로 떠나요. 고등어 잡이 배를 타고 바다를 떠날 때와 돌아올 때의 느낌이 전혀 달랐어요. 돌아올 때는 동이 터서였는지도 모르지만 조명도 밝고 배우들의 표정도 편안해 보였거든요.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저희끼리 공을 치우네 마네 말이 진짜 많았어요. '싹 다 치우고 모든 걸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고, 화분만 있는 작은 변화를 보여주면 어떨까?', '아니야! 치우긴 뭘 치워! 삶이 그냥 변한 거잖아.', '고등어잖아!', '고등어로 안 보여!' 이런 논쟁이 오갔죠.(웃음) 결국에는 장면을 만들다 보니까 치우기가 너무 어려웠고요. '자, 삶이 이런 거잖아. 치운다고 치워지는 게 아니야. 지운다고 지워지는 게 아니야. 이렇게 큰 변화가 일어났고, 그러니까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공 때문에 배우들이 넘어질까 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배우들이 너무 잘 피하더라고요.(웃음) 결국에는 빈 무대에 공이 채워지는 게 작은 변화지만 삶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그런 변화를 일으키는 거고, 스스로 선택해서 세상과 만난 사람과 수동적으로 누군가 만나보라고 해서 만난 사람의 세상은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지호와 경주는 서로를 만나 수동적인 삶에서 주체적인 삶을 살게 되었고, 그들의 세상도 학교에서 바다까지 넓어졌죠. 바뀔 수밖에 없었어요. 조명도 달랐고요. 배우들도 공이 없는 상태에서 연습을 하다 공이 들어오고 나서 표정이 전혀 달라졌죠. 연습할 때는 '아, 밝은 표정~' 이랬다면, 공이 들어오고 나서는 '와!'하고 환희에 찬 그런 느낌이었어요."

- 무엇보다 관객 사이에 무대를 가로질러 놓은 방식이 '고등어'의 가장 큰 특징이자 개성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연출을 하며 이런 무대를 좋아하고 즐겨 쓰게 되었어요. 관객들이 이야기를 가운데에 두고 서로를 만나는 그런 시간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죠. 잘 만들어진 그림을 대상화하는 시선에서 일방적으로 수용하면서 보는 거 말고, 상상이 무대의 빈 곳을 채우는 거죠. 배우들의 뒷모습이 보이는 장면이 많아서 고민했는데 정보를 전부 알 수 있는 화면보다 한참을 들여다봐야 읽어낼 수 있는 그런 순간을 느끼길 바랐어요. 배우가 뒤돌아 서 있을 때, 맞은 편 관객의 얼굴을 보면서 지금 어떤 표정일지 상상해보고 이런 무대를 통해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연을 통해 만나는 거죠. 연극을 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은 관객들에게 공통된 기억,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잖아요."

- 청소년극이니까 요즘 아이들의 모습을 최대한 비슷하게 표현하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전혀 그러지 않았어요. 어차피 우리가 백날 해봤자 십대들의 몸의 속도를 구현할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흉내내지 않으려고 했어요. 흉내낼 수 없어서. 역동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장면들은 배우들의 에너지 덕분이었죠. 그리고 관찰을 많이 했는데, 관찰이라기보다 청소년들이 살고 있는 곳에 배우들이 가만히 있었어요. 그러면서 아이들이 어떻게 하는지 기록하고 지켜보고 그런게 아니라, 그냥 아이들을 느꼈죠. 친구들과 대화 할 때 목소리는 어떤지, 말의 속도는 어떤지 여기서 얘기하고 있는데 저기서 또 얘기하고 전환이 빠르게 일어나는 상황을 체험하고 이걸 몸에 담고 익히자고 했어요."

'고등어'(2016), 이래은 연출

- 공연 연출가가 되고 싶은 청소년이 반드시 갖춰야 할 자질은 무엇일까요. 예술혼?
"공연 연출을 하려면 다른 예술가보다 자원이 많아야 해요. 연출은 수많은 사람과 소통하는 일이거든요. 내가 내 예술혼을 불태우면 안 돼요. 그 예술혼을 구현하게 하기 위해 누군가를 수단으로 쓰게 돼요. 그래서 각 예술가들이 가진 개성과 이 사람들의 경험을 듣고 흡수하고 조율해서 나눌 수 있는 품과 경험, 사람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되는데요. 예술가들은 정말 다양하고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각 분야에 대한 이해는 있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다 잘 할 필요는 없어요. 연출가는 미술을 못해서 무대 디자이너랑 작업하고요, 연기를 못해서 배우랑 작업하고 음악도 못 만들어요. 다 못 만들어요. 그렇게 만들 수 있는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같은 곳을 향해 하나의 작품을 만들도록 의견을 수렴하고 소통하는 그런 역할이기 때문에 예술혼을 불태우려면 다른 걸 해야 할 거예요."

- 이번 연극을 만들면서는 무엇을 향해 나아가셨나요.
"배우들과 처음 연습을 시작할 때 '2016년에 한국 사회에서 왜 우리가 청소년 연극을 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던졌어요. 우리는 청소년이 아니고 청소년들을 즐겁게만 해줄 것도 아니고, 우리 스스로 왜 청소년극이라는 걸 만들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2014년 이후 청소년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많이 달라졌고, 어른들 스스로 책임감 같은 게 생겼는데 그 책임감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이런 얘기도 나누었고요. 결론적으로 나눈 얘기가 그거예요. '우리가 해야 할 최대한의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려 하지 않고 바꾸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모습을 인정하고, 내 삶을 충실히 살면서 곁에 있는 사람. 그게 우리의 몫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고요. 이 삶을 충실히 담아내는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고 했죠."

- 마지막으로 청소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야망을 가져라! 꿈과 희망을!(한동안 말을 잇지 못함.) 생각 안 해봤어요. 이번 작업을 하면서 청소년이라는 단어에 불특정 다수를 묶지 말자는 이야기를 계속 나눴고요. 그래서 방금 질문을 들었을 때 누구를 향해 이야기를 해야하는지 고민이 좀 들어서 그랬어요. 정말 신중해지게 하는 질문인걸요. 같이 열심히 삽시다? 같이 삽시다? 같이 살아요!"

김혜나 TONG청소년기자(왼쪽)와 이래은 연출가.


글=김혜나(정의여고 2) TONG청소년기자 청소년사회문제연구소 정의여고지부
도움=김재영 인턴기자 tong@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사진제공=국립극단


▶10대가 만드는 뉴스채널 TONG 바로가기 tong.joins.com

Copyright by JoongAng Ilbo Co., Ltd. All Rights Reserved. RSS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