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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살생물제’ 대책도 제대로 못 내놓는 게 정부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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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국민의 생활화학물질에 대한 불안감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안방의 세월호 사건’인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의 여파로 탈취제·세정제·구강청결제 등 생활화학물질에 대한 불신이 공포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아예 제품을 내다 버리거나 유해성을 일일이 확인하는 이가 많다니 사태의 심각성이 예사롭지 않다. 어제 아타 울라시드 사프달 옥시레킷벤키저 대표가 대전에서 가습기 피해자와 가족에게 뒤늦게 사과를 했지만 진정성을 보여주지 않아 국민의 마음은 편치가 않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의 대응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주무 부처 장관인 환경부 윤성규 장관은 여전히 “당시 법령 미비 탓”으로 돌리고, 관계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보건복지부 등은 ‘나 몰라라’ 한다. 국민의 안전·생명과 직결된 문제에 부처 간 핑퐁이 가당한 일인가.

어제 이준식 사회부총리 주재로 열린 제6차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도 정부의 총체적 부실 대응이 드러났다. 범정부 차원에서 생활화화물질에 함유된 살생물제(Biocide) 관리체제를 정비할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기는커녕 엉뚱하게도 ‘외래생물관리 개선 방안’ 등을 의제로 다뤘다. 더욱이 윤 장관은 세종시에서 화상회의로 참석해 외래종을 논의했다니 어이가 없다.

세계적으로 생활화학물질이 필수품이 된 지는 오래다. 그렇지만 우리 국민은 이번 사태 전에는 생활화학물질의 30~40%는 살생물제라는 걸 잘 몰랐다. 정부가 유해성과 위해성에 대해 잘 알리지 않았고, 그 틈을 타 기업체는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했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은 선진국 동향에도 눈을 감았다. 유럽연합(EU)은 1998년부터 전체 화학물질 중 살생물제를 지정하고 사용기준을 물질 단위로 통합 관리하고 있다. 예컨대 ‘클로로에테인(염화비닐)은 어떠한 용도로도 에어로졸 압축 불활성 가스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깨알같이 규정하는 식이다. 그런 좋은 사례를 내팽개치고 대체 뭘 배워왔단 말인가.

지금 시급한 것은 ‘소는 잃었어도 외양간은 제대로 고치는 일’이다. 우선 5개 부처로 산재돼 있는 살생물제 관리체계부터 정비하라. 복지부·식 약 처 살균제·살충제, 환경부 소독제, 농림 부 농약, 해 수 부 방오제, 산업부 습기제거제 같은 식의 관리를 고집하는 건 부처 밥그릇 싸움에 불과하다. 허점이 드러난 ‘화학물질의 등록·평가에 관한 법(화평법)’도 손질해야 한다. 연간 1t 미만을 수입·제조·판매하면 독성시험을 면제해 주는 게 과연 타당한 규제 완화인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규제는 더 강화하는 게 올바른 방향이다. ‘살생물제관리특별법’ 지정도 서둘러야 한다. 환경부의 화평법, 산업부의 품공법(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 복지부의 약사법 등이 따로 놀면 절대 ‘내 일’이라는 책임감이 생기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정부의 강력한 의지다. 국무조정실장, 국무총리, 더 나아가 대통령이 직접 나서 통합 컨트롤타워를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제2, 제3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막을 수 있다.